매일신문

청도 보도연맹 학살 목격 박희춘씨

6·25 당시 민간인 학살과 관련된 '실록 보도연맹'이라는 책을 발간했던 박희춘(69)씨. "이젠 나이가 들어 하고 싶은 말을 표현하는 단어조차 떠올리기 힘들다"는 그는 고향인 청도 이서면 신촌리에 정착, 조용히 집필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박씨는 1990년 293쪽의 '실록 보도연맹'을 발간했지만 이 책은 출판 직후 기관에서 몰수, 결국 세상에 알려지지 못했고 그의 서재에는 가까스로 남겨둔 빨간 표지의 낡은 책 한 권만이 보관돼 있다. 이 책으로 인해 당시 현직 교사였던 박씨도 퇴직과 복직을 거듭하는 등 고초에 시달렸다.

그가 이 책을 낸 것은 부친이 희생됐기 때문.

"청도군 보도연맹원 학살사건은 암울한 시대가 만들어 낸 집단 살인사건"이라며 말을 꺼냈지만 당시 17세의 나이로 목격했던 현장이 다시 떠오르는 듯 한동안 입을 열지 못했다.

'실록 보도연맹'에는 △당시의 시대상황과 보도연맹의 실체 △청도지역 보도연맹원 학살사건 △보도연맹원의 자식이라는 사실 때문에 요시찰 인물이 돼 30여년 동안 겪은 고초 등이 담겨 있다.

우익학생 단체였던 '학련' 단원으로 활동하면서 당시 상황을 지켜봤다는 박씨는 "청도지역 보도연맹원들은 각 지서로 끌려가 한동안 연금돼 있다가 곰티재에서 집단 학살당했다"고 주장했다. 이장이던 박씨의 부친도 집앞에서 못자리를 하다 순경을 따라간 뒤 돌아오지 못했으며 며칠 후 연금됐던 사람들이 모두 사라져 백방으로 수소문한 끝에 곰티재를 찾아가 보니 골짜기마다 시체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는 것.

박씨는 "통한을 가슴에 묻고 50년을 눈물로 지새는 이웃에 대해 그동안 우리는 너무 무관심했고 당시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이 아직 살아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며 "청도군 보도연맹 학살사건도 거창, 함양, 산청 등지와 같은 맥락으로 국회에서 진실규명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하고 명예를 회복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청도·이홍섭기자 hslee@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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