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들은 자기 나라의 문학사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작가의 생가(生家)는 물론 머물렀던 곳이나 작품의 무대가 됐던 곳까지 기념물로 보존.관리하는 추세다. 이 때문에 작가들이 타계한 지 몇 세기가 지나도 그들의 문학정신과 사상은 문학기념관이나 활동 장소를 중심으로 살아 숨쉰다.
더구나 명작의 무대가 됐던 고장이나 큰 업적을남긴 작가들의 발자취를 더듬는 관광객들이 많아지면서 작가의 생가.기념관 등은 문화 자산(文化 資産) 보존과 후대를 위한 교육의 장으로서 뿐 아니라 지구촌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관광 명소로 떠오르고, 고부가가치도 창출한다.
영국 런던 북쪽의 작은 마을 스트래트퍼드 온 에이번의 셰익스피어 생가와 옛집이 기념관으로 보존.관리되고, 원형극장도 명소로 자리매김했다. 헤밍웨이의 복원된 생가와 기념관에서도 다채로운 사업들이 끊이지 않는다.
프랑스에선 보들레르.발자크의 숨결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고, '파우스트'의 산실인 독일 바이마르에 보존된'괴테 하우스', 실존주의 문학의 거장 프란츠 카프카의 생가가 있는 체코의 프라하, 낭만파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의 고향이자 기념관이 있는 영국의 코커머드, 하이네의 시 '로렐라이' 무대인 라인강변에는 해마다 수백만명의 관광객들이 몰린다고 한다.
◈대구는 빼어난 문인들의 산실
우리나라에서도 곳곳에 작가의 생가나 문학기념관들이 들어서고 있다. 충남 홍성의 만해(卍海) 한용운 생가,충북 옥천의 정지용 생가, 경남 통영의 청마(靑馬) 유치환 문학기념관, 강원 원주의 박경리 '토지문학관', 전북 고창의 미당(未堂) 서정주 문학기념관 등은 그 대표적 경우이며, 지금 추진 중인 곳도 적지 않다.
'문화의 도시'로 자부하며 일찍부터 빼어난 문인들을 배출해온 대구에는 문학기념관은 말할 것도 없고, 작가의 생가나 살던 옛집 하나 보존되지 않아 경북의 일부 지역과도 대조적이다. 안동에서는 '육사(陸史) 기념관',경주에선 '동리(東里).목월(木月) 기념관' 건립이 추진되고, 영양에는 지난해 이미 소설가 이문열씨 생가 옆에 '광산문학연구소'가 문을 열었다.
안동의 육사 시비(두 곳), 영양의 오일도 생가와 시비, 조지훈의생가와 시비, 이문열의 생가와 문학연구소 등은 하나의 벨트를 형성해 유교문화권과 함께 각광받을 가능성이 보이고,'동리.목월 기념관'도 신라 천년의 고도 경주의 관광 명소로 부상할 것으로 기대된다.
4년 전부터 대구시가 지난해 탄생 100주년을 맞았던 민족시인 상화(尙火) 이상화(李相和.1901~1943)의 옛집(중구 계산2가 84 계산성당 뒤편)을 보존, 우리나라 최초의 상화 시비(달성공원)와 동상(두류공원), 묘역(화원) 등을벨트화하려는 구상은 여태 이곳의 부지 매입 문제(시는 공시지가로 매입해야 하고, 주인은 그럴 수 없다는 입장) 때문에 제자리걸음만 거듭할 수밖에 없었다.
이 와중에 최근 시민운동에 힘입어 새로운 가능성을 열고 있는 점은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다.더구나 시민운동은 상화가 만년의 2년6개월 정도 창작의 산실로 삼았던 이 옛집과 함께 국채보상운동을 이끈 서상돈, 독립운동가 이상정 장군이 살았던 인근의 옛집까지 보존해 이 일대를 유적지 소공원으로 만들 움직임까지 보여 더욱 그렇다.
◈업적기려 문예부흥 기대
'민족시인 상화 고택 보존 100만명 서명운동'은 이미 호응을 얻으면서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 곧 '상화 고택 보존시민운동본부'가 결성되고, 후원금 모금과 기념관 건립을 위한 자료와 유품 수집에 나설 움직임도 구체화 단계에 있는 모양이다.
서문로 2가에 있던 그의 생가가 사라진 지는 오래지만, 옛모습을 거의 그대로 간직한 이 옛집을 비롯 이 일대라도 문화유적지로 빛을보게 돼 대구 시민들의 자긍심을 높이는 명소로 자리매김할 수 있기를 기대하며, 당연히 그렇게 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도 해 본다.
문학기념관 건립은 단순히 특정 작가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는 사업이 아니며, 당대 문화 자산을 보존하고 관리하는 소중한 일이다.
정신문화가 뒷전으로 밀리는 시대적 추이를 거스르면서 삶의 질을 높이는 작업이라는 점에서도 그렇다. 상화 옛집 일대의 문화유적지 만들기의 실현과 이를 계기로 대구에서 품격 있는 문화를 새롭게 창출하는 문예부흥운동이 불꽃처럼 타오를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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