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삼불차' 정신

우리 사회는 요즘 온 천지에 '검은돈' 냄새로 가득하다. 이른바 '게이트' 시리즈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가 하면, 공직자와 금융사범들이 돈을 사이에 놓고 얽히고 설켜 고약한 냄새를 진동시킨다.

몇 천만원 정도는 '떡값' 수준이고, '억' '수억' 정도는 삼척동자들까지 별 표정 없이 들먹이는 세태다. 정치권이나 공직사회의 부패상이 얼마나 뿌리 깊은 지 그 끝마저도 안 보일 지경이다. 이제 우리 사회는 정말 '돈만 있으면 귀신도 부린다'는 속언의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는 것일까.

▲'검은'이라는 형용사와 '돈'이란 명사가 결합된 '검은돈'은 '뇌물의 성격을 띠거나 그 밖의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주고 받는 돈'이다. 영어사전에도 '검은 돈(black money)'이란 말이 '은폐 소득'이라는 의미로 풀이돼 있다. 사회를 병들게 하는'검은돈'이 돌고 있는 근본적인 원인은 황금만능주의와 도덕성의 타락에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 중.고생들의 황금만능 사고가 성인보다도 훨씬 심각하다니 큰 걱정이다. 한국교육개발원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학생 2명 중 1명(52%)이 '돈이면 모든 게 해결되는 세상'(성인은 30%)이라고 응답했고, '부모 재산으로 일 안 하고 잘 사는 사람이 부럽다'도 47%(성인 30%)나 됐다. '주운 돈을 그냥 갖는다'가 70%, '이익이 생긴다면 거짓말을 하겠다'는 16%로 각각 성인의 두배이며, 버스를 탈 때 보는 사람이 없으면 요금을 안 내는 경우도 6%(성인 5%)다.

▲성(性) 문제 역시 학생들이 성인에 비해 훨씬 개방적이며, 돈이 된다면 비행마저 저지를 수 있다는 학생들도 적지 않아 청소년들의 도덕성이 땅에 떨어졌음을 말해 준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음란 비디오 테이프를 보는 것이 괜찮다'고 생각하는 학생이 4명 중 1명(성인 5명 중 1명)이나 되며, 돈이 필요하거나 욕구 충족을 위해서는 청소년 성매매(원조교제)도 가능하다고 응답한 중.고생들이 무려 7%로 성인의 두배에 이르고 있다.

▲경북 영양의 시인 조지훈(趙芝薰) 집안이 400여년 동안 지켜온 '삼불차(三不借)' 정신은 유명하다. '돈을 빌리지 않고(財不借), 문장을 빌리지 않으며(文不借), 사람을 빌리지 않는다(人不借)'는 뜻이다. 상황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명분에 어긋나는 청탁은 하지 않고 살겠다는 각오인 셈이다. 우리 사회는 도덕성이 무너지면서 썩어도 너무 썩었다. 윗물이 맑지 않아 아랫물이 더욱 혼탁해지기도 했다. '검은돈'이 사라지고 도덕성이 회복되는 사회는 '삼불차' 정신에서 가능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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