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하마드 알리 사원은 카이로를 방문하는 관광객이면 누구나 둘러볼 정도로 유명한 관광지다. 그러나 이 일대의 주위환경은 마치 전쟁이 훑고 지나간 지역처럼 처참하기 그지없다.
마구 부서진 콘크리트조각들, 버려진 쓰레기들이 방치돼 있어 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불쾌감을 준다. 특히 무하마드 알리 사원으로 올라가는 언덕배기에서 왼쪽 편 골목으로 들어서게 되면 수많은 집들이 폐허화된 채 그대로 남아 있다.
그러나 이곳 폐허더미 위에 비교적 깨끗해 보이는 집이 한 채 있다. 이 집에 들어선 일행을 맞는 리자이너 카이후(60세)씨의 표정은 밝기만 하다. 2년전 폐가를 사서 완전히 수리를 끝낸 후 외부사람들에게 처음으로 공개하는 날이라고 했다.
옥상 위로 일행을 안내한 카이후씨는 집수리 기간동안 겪었던 어려움들을 마치 푸른 허공으로 날려버리기라도 하려는 듯 깊은 탄식과 함께 지난 날들을 회상했다.
처음 이 집을 사서 수리를 시작하려고 했을 때 대부분의 건축업자들은 집을 뜯어내고 다시 짓는 게 더 싸다며 수리를 말렸지만 옛집을 다시 살려내겠다는 그의 일념을 꺾을 순 없었다. 집수리를 시작했을 당시엔 이웃들이 그를 정신병자로 취급할 정도였다고 한다.
카이후씨가 집을 사기로 작정했던 이유는 바로 "옥상에서 보이는 활짝 펼쳐진 카이로시내의 경관 때문"이었다는 낭만적인 이유와 더불어 "근방의 폐가 주인들과 정부에 조금이라도 자극을 주기 위해서 였다"고 말했다.
사실 이 지역을 차지하고 있는 건물들의 상태는 노후화하여 곧 붕괴할 정도로 상태가 심각하다.
하지만 정부는 이를 완전히 방치하고 있고 건물주들도 수리는 뒷전인채 몰려드는 세입자들로부터 집세 받는데만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이집트인 특유의 낙천적인 성격을 가진 카이후씨는 "이상한 눈으로 나를 대하던 이웃사람들의 태도도 이젠 180도 달라졌고, 집수리에 대해 묻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며 희망적인 미래도 밝혔다.
집수리현장을 둘러본 일행은 이집트문명연구소로 모두 발길을 돌렸다. 칸 칼릴리시장의 작은 골목에 자리잡고 있는 연구소는 시장주변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자선사업에서부터 '하싼 파티'의 '구르나'마을을 보존하기 위한 운동까지 광범위하게 전개하고 있다.
지역주민들에겐 모임장소로 제공되기도 하고 공동식사를 하는 식당으로 사용되기도 하는 곳이다. 연구소장인 나왈 하싼 박사가 특별히 관심을 기울이는 분야는 하싼 파티(1900~1989)의 건축법으로 건설된 '구르나'마을을 보존하고 그의 건축법을 퍼뜨려 이집트의 주택문제를 해결하고 나아가 아랍세계의 주택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 하싼 박사는 카이로에서 거의 1천km나 떨어진 구르나마을을 정기적으로 방문하여 지역주민들을 계몽하는 일을 하고 있다.
구르나 마을은 건축가 하싼 파티가 가난한 이집트사람들이 부담할 수 있는 집들을 실험적으로 건설하면서 유명해졌다. 하싼 파티는 1945년에 자신이 평소 주장해오던대로 전통자재인 진흙벽돌과 나무, 갈대 등을 사용하여 직접 한 마을을 건설, 세계인들과 이집트인들에게 자신의 주장을 증명해보였다.
그의 사후 5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람들은 하싼 파티가 지은 집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평생을 가난하게 살아온 시골사람들에겐 도시의 콘크리트집이 '부(富)의 상징'으로 머리 속에 박혀있기 때문에 이 고정관념을 깨뜨리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고 나왈 하싼 박사는 털어놓는다.
비용이 비싼데다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운 콘크리트집에 대한 이집트인들의 막연한 선망은 이집트의 주택문제를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콘크리트집을 짓는데 드는 비용이 3천만원이라면 전통 진흙벽돌집을 짓는데 드는 비용은 300만원 이하. 가난한 이집트인들조차도 부담할 수 있는 비용이다.
필자가 방문했던 구르나는 다른 이집트마을과는 완전히 달랐다. 건축물들이 모두 이슬람식이어서 이슬람세계의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공동시장, 학교, 마을회관, 이슬람사원등의 공공건물들과 일반가옥들은 비록 세월이 많이 흘러 낡기는 했지만 계획적이고 실용적으로 지어졌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고 돔과 아치형의 건축물은 이슬람건축의 백미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하싼 파티가 건설했던 구르나마을은 그에게 거의 100개에 가까운 세계적인 건축가상을 안겨주면서 그를 '불멸의 건축가'로 만들었다. 지금은 전체 아랍세계에서도 그의 건축술을 응용하고 있을 정도이다. 그럼에도 정부와 관계가 소원했던 하싼 파티는 언제나 정부로부터 외면당했다. 정부는 하싼 파티가 죽은 후(1989) 구르나 사람들을 다른 곳으로 이주시킨 후 열린 박물관을 만든다고 발표한 적이 있다.
또한 이곳에 사는 지역주민들에게 진흙집이나 건물은 '가난의 상징'이라면서 낡은 집들을 보수할 것을 권유하기는커녕 도리어 집을 뜯어내고 콘크리트집으로 대체할 것을 은근히 장려해왔다.
이에 맞서 나왈 하싼소장은 주민들을 설득하고 계몽하여 정부의 무책임한 정책으로부터 보호하는 일과 전아랍세계에 하싼 파티의 정신과 건축술을 소개하면서 서구화가 가져다 준 병폐인 '전통의 말살'을 '전통의 계승과 발전'으로 바꾸기 위해 요즘도 지역주민들과 토론에 여념이 없다.
하영식 youngsig@otenet.g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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