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하는 오후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 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나는 온 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음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명이 접혔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이상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봄이 오고있다. 대구 출신의 민족시인 이상화의 대표작이다. 상화 시는 흔히 탐미적인 시와 저항적인 시로 나눠진다. 그러나 둘의 비중이 같을 수는 없다. 상화는 민족해방시인이자 계급시인이다.

이 시에서 그 점을 느낄 수 있다.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잔재가 아직은 남아있던 시기, 호미로 흙을 매고 땀을 흘리고 싶다는 시인의 생각 역시 무산계급적이다.

최근 상화고택을 유적으로 지정하고자 하는 대구시민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이런 움직임도 결국 상화문학에 대한 제 몫 찾아주기인 것이다.

김용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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