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오후 발생한 대구시 중구 북성로 1가 한성빌딩 화재는 대낮에 도심 건물에서 불이나 한꺼번에 4명이나 숨졌다는데서 충격을 주고 있다. 이날 화재 역시 소방당국 및 관할구청의 관리소홀에다 입주자들의 무관심 등 안전 불감증이 빚은 '인재(人災)'로 드러나고 있다.
불이 난 한성빌딩은 지난 79년 지은 5층 복합건물로 최초 발화장소인 한성기업 등 10여개 업체가 입주해 있는데 출구는 각층 정문쪽을 통해 밖으로 나가는 주출입구인 계단과 건물 뒤로 연결된 폭 1m 안팎의 비상계단, 엘리베이터 등 3곳이 있었다.
하지만 불이 났을 당시 4·5층의 주출입구는 치솟는 불길과 자욱한 연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 곳을 통해 외부로 빠져나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또 화재로 엘리베이터를 사용하는 것도 어려웠다.
마지막 '탈출구'라 할 수 있는 비상계단은 무용지물이었다. 비상계단으로 안내하는 표시등이 아예 없는가 하면 비상계단으로 통하는 출구는 각층마다 들어선 사무실 때문에 통행이 불가능했다. 상당수 입주자들은 비상계단이 있는지 조차 모르는 상태였다.
또 비상계단에는 합판, 버려진 가재도구, 사무집기 등이 어지럽게 널려있어 한 사람이 겨우 빠져나갈 수 있었으며 어렵게 1층까지 내려가더라도 사방이 벽으로 막혀 있어 사실상 외부로 나갈 수 없게 돼 있었다.
이 때문에 5층에 있던 여성 2명은 연기를 피해 아래층으로 내려오려 했으나 비상계단을 제대로 찾지 못해 결국 화장실 창문을 깨고 뛰어내리다 변을 당했다. 경찰 한 관계자는 "건물에 비상통로만 제대로 확보됐더라면 5층에 있던 사람들은 목숨을 건질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이 빌딩 2층에 입주한 미주다방 한 종업원은 "3년동안 이곳에서 일했지만 출입구 외에 비상계단이 별도로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며 "비록 비상계단이 있는 줄 알았더라도 비상계단으로 통하는 출구가 3개월전부터 잠겨져 있는 옆 업체 사무실 안에 있어서 이용할 수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일부 입주자들은 화재 등 사고를 우려, 자체적으로 비상계단을 만들기도 했다. 2층 (주)동인직업소개소 업주 정태영(47)씨는 "지난 95년 아예 비상계단을 사무실에다 새로 설치했다"며 "사무실이 출입구와 멀리 떨어진 구석에 위치하고 있어 만일의 사태에 대비, 사무실 옆에다 비상계단을 설치했다"고 말했다.
관할소방서인 중부소방서는 지난 2000년 9월 이 빌딩에 대해 소방점검을 했지만 비상계단은 점검조차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지난 해 7월 이 빌딩 옥상에서 선풍기 과열로 추정되는 불이 났는데도 소방서측은 비상계단 등 소방점검을 제대로 하지 않아 인명피해가 커졌다는 의혹마저 제기되고 있다.
대구시 소방본부 한 관계자는 "비상구를 막고 사무실 등 시설물이 들어서 통행에 지장을 주는 경우가 많아 행자부에 건의했으나 아직 아무런 지침도 내려오지 않았다"며 "비상구로 통하는 공간에 사무실 등을 설치하는데 대한 규정이 없다보니 단속이 어려운 실정"이라고 해명했다.
대구 중구청 건축과 한 관계자도 "건축법상 비상계단만 있으면 출입문이 잠겨있어도 이를 단속할 수 있는 구체적인 규정이 없다"며 "이번 화재가 난 한성빌딩은 소규모 건물이라 건축법상 점검대상도 아니다"고 말했다.
또 화재 당시 휴대용 소화기가 각층 복도에 하나씩 있을 뿐 사무실 내에는 소화기가 거의 없어 초기진화가 어려웠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1층과 5층 복도에 있는 창고에는 휘발성이 강한 등유와 페인트통이 널려있어 만일 불길이 이 곳까지 미쳤더라면 대형화재로 번질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정욱진기자 pencho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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