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흙 냄새가 풍긴다. 끊임없고 발단없는 생의 구멍, 아파트 구멍 안에서 자신과 싸우다 보면 몇 개의 평상과 약간의 흙이 불거져 있어 발밑에 밟히는 아파트 뒷편으로 도망가게된다. 아니 산책간다.
코앞에 있는 봄의 아련한 기운이 시멘트 블록을 뚫고 깊은 땅속에서부터 슬며시 냄새 풍기는데 거기 내 어릴적,겉으로 잘 삐치는 속 깊은 친구같던 흙을 떠올린다.
학교 운동장이나 동네 놀이터에서 흙을 얼마나 껴안고 뒹굴어 머리카락 속 겨드랑이 속까지 바스락거리고…. 자존심이 강해서인지 자꾸 무너져 내리는 모래성을 만들어 주어 나는 흙과 머리 싸움을 벌이느라 늦도록 집으로 돌아가지 않을 때도 많았다.
남자도 여자도 아닌 그냥 애늙은이 같았던 내 어릴 적 흙은 나같은 애들을 너무 좋아해 주어 세계만한 지도도 오징어도 사다리도 만들어 주고 땅 따먹기도 할 수 있도록 자기를 공짜로 다 내주었고 그런 바보같고 너무 착한 흙의 마음때문에 내가 그 흙을 한줌씩 손아귀에 넣어 고무줄 끊는 남자애를 좇아 마구 던질 때에도 묵묵히 내편이었다.
나는 그 흙을 엄마 젖가슴 만지듯 비비며 놀다가 짜릿함을 집으로 가지고 돌아와 긴 잠이 들고 다음날 그 자리에 가 보면 더 이상 자라지도, 비만 먹고 사는 듯한, 내 어릴적 마술같던 흙 지금 와서 이제서야 생각해보면 지구의 자전을 따라 돌아가는 원죄의 슬픔같은 것이었나.
아니 물레방아 도는 내력과 어딘가 닮았던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잠시 평상위에 걸터앉아 조금 불거져나온 흙위에다가 신발과 양말 벗은 발을 디디어 보면 차갑고 까칠가칠한 느낌과 함께 마음이 한껏 맑아 지면서 저기 원시로부터 우리의 생명력을 솟구치게하는 힘을 불러 일으키는 흙을 지켜야겠다,
이제 다 어디로 숨어버린 흙을 찾아 밟고 살아야겠다 이 아파트 구멍 저 밑바닥에 갇힌 흙을 끄집어내어 살아 숨쉬는 봄흙으로 가꾸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엉뚱한 추억과 함께 흙을 예찬해보는 것이다.
시인 고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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