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암칼럼-以血洗血은 마십시오

세상 살면서 요즘처럼 악(惡)에 대한 버전을 빈번하고 귀따갑게 들어본적도 없는 것 같다.

악의 축, 악의 화신, 악의 두목, 악의 뿌리, 악의 제국…. 선(善)은 오간데 없고 세상이 온통 악으로만 꽉 찬듯 혼돈될 만큼 서로가 서로를 악이라 부르며 다투고 있다. 한쪽에서 '네가 바로 악의 축이다'하면 반대쪽은 '너는 악의 두목'이라며 맞받아친다.

우방국의 대통령은 악의 화신이요 야당총재는 악의 뿌리라며 좌충우돌 몰아붙이는 사람들도 있다. 어느날 갑자기 세상의 모든 선(善)이 다 사라지고 악만 남은 것은 아닐것 같은데 왜들 갑자기 악이란 버전들을 들먹거릴까 요즘 세상에서는 무엇이 악이며 어떤것이 선(善)인가.

악(惡)자를 파자(破字)하면 곱사등이 아(亞)자와 마음심(心)이다. 곧바르지 못한 모양으로 비뚤어진 마음이 곧 악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악이란 비뚤어진 마음에서 생겨나는 생각과 행동이고 그 반대는 선이 되는 셈이다.

그럼에도 요즘 치고받는 악의 시비를 보면 서로서로 자신만은 선이고 상대만 악이라고 하는 독선적인 시비를 하고있다.

그런 시비들은 처음엔 서로 네가 악이라고 고만고만 다투다가 충돌이 일어날때는 비뚤어진 강자가 선으로 남고 곧바른 약자는 악으로 몰리고 끝나는 경우들을 때때로 보게된다. 묵은 역사를 들출것도 없이 아직도 다 끝나지 않은 아프간전쟁과 그저께 끝난 동계 올림픽만 봐도 그렇다.

최근세사(史)에 미국이 악이란 용어로 다른 국가를 비방한 것은 1983년 레이건이 소련을 두고 '악의 제국'이라고 지칭한 것이 시초다.

그들의 거침없는 어휘 선별에서 내비치는 이미지는 미국은 정의와 민주 그리고 자유가 가을석류처럼 알알이 꽉차 있는 선하고 멋진 나라라는 것, 그래서 세계의 모든 악이란 악은 모두 쓸어버릴 수 있고 쓸어낼 권리와 사명을 혼자서 다 떠맡고, 있는듯하는 글로벌 폴리스(Global Police)의 이미지다.

웬만큼 먹고살만큼된 국가도 하루아침에 살림을 거덜 내버릴 수 있을 만한 경제대국, 고만고만한 나라들이 고개라도 치켜드는 날엔 단숨에 꺾어버릴 수 있는 군사대국, 그만하면 충분히 세계의 모든 악은 혼자서 쓸어버릴 수 있는 그야말로 동네 파출소가 아닌 글로벌 폴리스 국가다. 사실이 그럴수도 있지만 그들이 악의 축이라고 말하면 악의 축이요 악의 제국이라고 부르면 악의 제국이 될 수밖에 없다.

강한 것이 선한 것이란 논리가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 어차피 세상에는 이런저런 악이 존재하게 돼있지만 가능한한 억제되고 보다 더 많이 제거될수록 좋은 것이라면 글로벌 폴리스 같은 강력한 선은 필요하다. 그러나 악을 없애기 위해 허락한 강한 선이 또 하나의 새로운 독선과 악의 모습이 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악을 갚는데 악으로 하면 악을 더 한다는 속담이나 피를 피로서 씻으면 더욱 더러워진다는 이혈세혈(以血洗血)의 금언 등은 9.11사건 후의 아프간 전쟁에서 보여준 방식의 권선징악과 강국중심의 오심으로 얼룩지은 동계올림픽에서 보인 '강한 것이 선한 것'이란 선악시비를 또다른 시각으로 돌아보게 한다.

미국이 자랑하고 좋아해온 선의 가치는 OK목장의 결투나 '하이 눈'과 같은 영화속에서 보는 페어 게임에 있었다. 상대가 아무리 제시 제임스 같은 악당일지라도 선을 지키는 보안관과 똑같은 거리에서 똑같은 순간에 총을 뽑는 것으로 선악을 가리는 페어 게임을 정의로 보았다. 나만 선이고 상대는 언제나 악이라는도취적 가설을 정해놓고 악이 택한 방법과 똑같은 방식으로 악을 제거하는 것은 '선으로 악을 이겨내라'(성경)고한 미국인의 종교적 가르침에 비춰보더라도 선이라고 할 수 없다.

그것은 평균적인 지구인들이 느끼는 보편적인 상식이다. 물론 부시 대통령이 악의 축을 없애겠다는 지구촌 평화수호의지 그 자체는 비판해서는 안된다. 반대로 징악의 방식에 대해 하느님의 방식을 따르고 이혈세혈은 말라고 말하는 것 또한 반미나 반평화적인 것은 결코 아니다.

동계올림픽 개막식에 굳이 9.11 사건을 상징하는 찢겨진 성조기를 들고 입장한 것이 징악과 세계인의 평화와 선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 치자. 그러나 올림픽과 스포츠정신이 오심과 악심(惡審)으로 얼룩져 찢겨진 오륜기는 지구촌 사람들에게 선과 악 어느 쪽을 더 상징했을까. 간디는 강국의 핍박을 받을때 이렇게 말했다. "악은 반드시 상대에게 악을 낳게되며 모욕은 복수를 부르게 된다".

부디 우방 미국은 존중받는 글로벌 폴리스답게 선으로 악을 이기는 진정한 '선의 축, 평화의 두목'이 되기 위해서라도 이혈세혈은 말아주기를 바란다. 그들에게 '빼앗겼다'는 금메달이 아까워서라거나 후세인과 북한 정권이 고와서, 아니면 빈 라덴이 불쌍해서 하는 소리가 아니다. 60억 인류 모두의 참된 평화를 생각해서다.

김정길 본사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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