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간데스크-대구와 통영 사이

직장인의 출퇴근과 화물수송, 여행객들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는 철도 노조의 파업이 극적으로 타결됐다. 파업 때문에 멈춰선 열차들이 한데 모여있는 것을 하늘에서 내려다보니 갑갑한 가슴을 감출 수 없었는데, 철도 노조의 파업이 조기에 수습돼 안도의 한숨을 내려쉰다.

철도와 열차. 끝없이 이어진 까만 선로를 미끄러져가는 열차를 생각하면 지금도 어디론가 떠나고싶은 소녀적 충동을 느끼곤 하지만 문학도였던 대학 시절에는 괜스레 낭만에 젖어서 불쑥 떠나고 싶은 때가 많았다.

그래서인지 문득 눈떠보면 나도 모르게 충무로 가는 남행 열차를 타고 있던 때가 있곤 했다. 그것은 충무가 봄처녀 치마 자락에 묻은 훈풍이 설핏 감지되는 남해의 미항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초대받지는 않았지만 누군가 따뜻한 남녁에서 날 기다릴 것 같았고, 특히 끊임없이 파도가 밀어닥치는 바닷가에 서면 짭쪼름한 미역냄새와 함께 교향악이 울려퍼질 것 같은 '문화적 환상' 때문이었다.

바닷가 작은 마을이 부러운 이유

나에게 그런 환상 속의 도시로 남아있는 충무(참 통영으로 바뀌었지)는 박경리 김춘수 윤이상 유치환 전혁림 등 예인(藝人)을 낳은 '한국의 나폴리'이자 문화의 도시로 각인돼있다. 학교를 졸업하고, 결혼과 직장생활에 파묻혀 20대에 품었던 마음의 고향 '통영'을 잊고 지냈다.

그런 통영을 향한 나의 열병이 다시 도지고 있다. 바로 3월8일부터 18일까지 세계적인 음악축제로 선보일 윤이상 음악제 때문이다. 아름다운 청춘 한때를 잠못들게 하던 통영의 그 바닷가에서의 음악축제가 열리는 것이다.

이데올로기라는 철벽에 가로막혀, 일본까지 왔으나 정작 고국에는 발을 들여놓지도 못하고 돌아섰던 비운의 작곡가 윤이상이 꿈에도 잊지 못한 고향 통영에서 그를 기리는 국제음악제가 열린다니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가보리라. 열차를 타고, 내달에 통영에서 열릴 국제음악제에 구경간다는 계획만으로도 요즘 내 생활은 즐겁고, 유쾌하다.

사실 지난해 여름휴가 때 모처럼 온 가족과 함께 통영에 다녀오긴 했다. 25년만에 찾아본 통영은 감성적이던 상아탑 시절과는 또다른 상념을 몰고왔다. 바로 예술가와 고향, 고향과 작품, 작품과 지역문화라는 상념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작년 청마 생가와 청마 시비를 둘러보면서도 그랬고, 잊어버릴까봐 꿈속에서도 그 끈을 놓지 못하던 윤이상 생가를 떠올리면서도 마찬가지였다. 통영이 없었다면 어떻게 윤이상이라는 세계적인 작곡가를 우리나라가 갖게 되었으며, 충무 땅이 없었다면 청마와 윤이상이 불멸의 작품을 남길 수나 있었을까.

청마가 없는 충무, 윤이상이 없는 통영은 아무리 그 바닷가 파도소리가 나를 유혹할지라도 그리 매력적이지 못하다. 단지 어느 해안도시나 비슷한, 그저 그런 소비도시일 뿐이다.

그러나 윤이상의 한(恨)과 청마의 시혼이 영원히 머물게 될 통영은 해안도시를 넘어서서 문화도시로 비상하면서 늘상 그렇게 나를 끌어들인다. 그래서 대구사람이지만 나는 남쪽 바닷가의 작은 도시 통영이 부럽다. 아니 통영이 부러운게 아니라 통영의 문화력이 부럽다.

앞서 살다간 예술인들의 흔적을 가꾸고, 그들이 남긴 창작물을 보듬고 가꾸어서 전세계로 알려나가는 통영은 더 이상 남해의 작은 마을이 아니다. 문화적 유산을 통해 통영은 세계속의 도시로 진출할 바닷길을 연 미래의 도시이다.

그럼 대구는 어떤가. 한때 전국민에게 힘과 용기를 불어넣었던 가곡 '희망의 나라로'를 작곡한 현제명이 대구사람이고, 그가 앉아서 가락을 떠올리던 '희망의 계단'이 신축한 제일교회 옆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5개의 오페라단이 활동하고 있고, 국내에서 보기힘든 오페라 하우스까지 건립되고 있다. 두류공원에는 야외음악당도 있다.

분지이면서 나무와 숲이 아름답고, 담장허물기가 폐쇄적인 도시 분위기를 씻어내고 있는 대구를 음악이 흐르는 문화도시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할까. 한없이 문화대국을 부러워한 백범 선생처럼 나도 오직 높은 예술을 만들어내는 문화도시 대구가 그리울 뿐이다.

최미화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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