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공공부문 파업이 남긴 것

사상 처음으로 벌어졌던 철도.가스.발전산업 등 3개 국가기간산업 노조의 연대파업은 국민불편해소에 최대 책임이 있는 정부는 물론 노조와 사용자, 그리고 교통편을 잃어버려 발만 동동 굴러야했던 국민들에게까지 적지 않은 상처를 남겼다.

특히 올 상반기 지방선거와 연말 대통령 선거를 앞둔 정부.여당으로서는 선거를 의식해 쏟아질 사회 각계각층 이해집단들의 요구를 어떻게 처리해야할지에 대한 고민을 더욱 키운 '사건'이기도 했다.

당초 정부는 파업권이 엄격히 제한된 '필수공익사업장'인 철도.가스.발전부문 노조가 '감히 파업을 할 수 있을까'라는 예단에 빠졌다가 25일 새벽 전격파업상황을 맞자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의약분업, 주5일제 법안 도입 등에서 일방통행식으로 달리다 결국 혼란만 초래하고 명쾌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한 현정부의 정책집행 관행이 노조 파업 대응에서도 재연된 것이다.

25일 아침 표를 들고 동대구역에 나왔다가 기차를 타지 못한 많은 시민들은 "노조도 야속하지만 정부가 더 밉다"는 직설적 표현을 감추지 않았다. "파업에 들어간다고 지난해부터 몇번씩이나 얘기가 나왔는데 그동안 정부는 뭘 했느냐"는 목소리였다.

정부가 구속.징계를 공언했던 노조집행부도 정부의 예정대로라면 사법처리와 사내 징계를 감수해야하는 것은 물론, '불법파업은 이제 그만'이라는 일부 여론의 십자포화를 맞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정부는 일부 여론을 등에 업고 파업권이 제한돼있는 철도.발전.가스 등 필수공익사업장의 잇따르는 파업에 대한 대책을 마련할 것으로 보이며, 이번 파업 사태의 주동에 대해서는 '본보기 차원'의 강경처벌도 불사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공공부분 파업에서 비롯된 여론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정부의 강공 드라이브가 길지는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철도노조의 교섭권을 위임받은 한국노총이 여당에 대한 낙선운동 불사를 선언하는 등 조직적인 정치 세력화를 꾀하고 있고 발전노조 교섭을 위임받았던 민주노총도 향후 노동관련 법안 입법 등에서 '일전불사'를 흘리고 있어 정부의 부담이 만만치 않은 것이다.

당장 다음 달 24일쯤 일부 공무원 단체가 정식 노조결성을 앞두고 있다. 또 비슷한 시기 전국 시내버스 노동조합 단체인 자동차노련이 '투쟁'을 예고하고 있는가하면 교수노조도 본격적인 세불리기에 나서는 등 춘투가 조기점화되고 있다는 것도 정부의 어깨를 무겁게 하고 있는 부분이다.

더욱이 공공부문 파업에서 노조의 '민영화 철회 요구'는 절대 교섭대상이 될 수 없다던 정부가 철도 및 가스노조와 협상하면서 민영화에 대해 노조와 재차 협의한다는 것을 골자로 한 합의문을 만드는 등 불씨를 남겨둔 것은 선거를 앞둔 각종 이익집단의 요구에 대응하는 정부의 입장을 더욱 난처하게 만들지 모른다는 의견도 터져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당장의 노동현안으로 제기돼 다음달부터 논의가 급물살을 탈 주5일 근무제 도입, 공무원노조 도입 등에서 노동계의 입김이 거세질 것으로 예상하는 전망이 조금씩 힘을 얻어가고 있으며 공공부문 파업에서 '실기'를 범한 정부가 과연 어떻게 명예회복에 나설지도 관심거리다.

최경철기자 ko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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