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그림이야기-그림은 왜 비쌀까(하)

지역의 한 화랑대표가 지난해 여름 파리의 한 화랑에 들렀다. 그는 화랑 전시장을 둘러보다가 미술품의 유통구조와 유명 화가의 탄생 과정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이 화랑은 얼마전만 해도 김창렬 이우환 등 한국출신 작가들의 작품을 내걸곤 했는데, 중국작가들의 그림으로확 바뀌어져 있더라는 것.

그는 "불과 4, 5년전만 해도 중국 작가들의 작품은 헐값(?)에 가까웠는데…"라는 생각만머리에 맴돌았다고 한다. 중국인 특유의 정서를 그림에 담아봤자 점당 1만, 2만달러가 고작이었는데, 이제는 10만,20만달러를 호가하는 30, 40대 젊은 작가들이 수두룩하다.

중국의 경제발전과 맥을 같이 하는 대목이다. 화상(畵商)들은 싼값에 작품을 사두었다가 10, 20년후 초강국으로부상할 중국 시장에 수십, 수백배를 남기고 판다는 계산인 셈이다. 뉴욕과 파리의 화상들이 유망한 중국 작가를 찾는데혈안이 돼 있는 이유다.

아프리카 소국 출신의 작가가 수십,수백만 달러에 자신의 작품을 팔았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을 것이다. 작가 출신지역의 경제력과 문화적 분위기에 따라 가격이 정해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철저하게 자본주의 경제질서에 따르는 게 바로 그림값이다.

그럼 국내 유명 작가들은 해외에서 어떤 대접을 받을까. 백남준 이우환 등 외국에서 성장한 몇몇 작가들을 제외하고는, 제대로대접을 받지 못한다고 보면 옳다. 국내 화단을 휘어잡는다는 몇몇 대가들도 맥을 못추는 것은 물론, 덤핑가격 시비가 끊이지 않는 게현실이다. 작품수준은 제쳐 놓더라도, 무엇보다 투자가치 면에서 별다른 흥미를 끌지 못하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제일 비싸다는 박수근의 작품(호당 1억5천만원)도 유럽 경매시장에서는 점당 10여만달러(1억3천만원)선에 거래되는게보통이다. 그것도 한국의 국제적인 지위가 높아감에 따라 많이 오른 가격이다.

국내 작품값도 외국에 비해 그리 비싸지 않다는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80년대 후반 한때 '작품이 없어 못팔지경'이었지만, IMF를 거치면서 거품이 대부분 빠졌다.

한 화가는 "얼핏 한점에 몇백만원이라고 하면 엄청 비싼 것 같지만,화가들은 일년에 고작 몇십점을 파는데다 화랑몫(보통 판매대금의 40∼60%), 전시비용, 재료비 등을 빼고나면 손에 쥐는게 별로 없다"고 말했다. 화가의 숫자는 하늘의 별(10만명)처럼 많지만, 그림만으로 그럭저럭 살 수있는 전업작가가 200여명에 불과하다는 것만 봐도 그렇다.

농산물 처럼 왜곡된 유통구조와 취약한 인프라가 원인이다.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의 경우, 공공미술관이 거래 작품의50∼80% 이상을 구입해주는 반면, 개인소장가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는 국내 유통구조로는 그림값이 제대로 매겨지기 힘들다.

한 화랑 관계자는 "그림값이 현재 정체상태를 보이지만, 작가.화랑들의 해외진출이 더욱 늘고 국내경기가 활성화되면 갈수록올라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언제쯤이면 배고픈 화가들이 없어질까.

박병선기자 lala@imaeil.com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