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사람들은 파스나흐트(Fasnacht)가 열릴 때의 바젤(Basel)시를 가장 아름다워한다. 파스나흐트는 카니발의 스위스식 표현. 취리히에서 기차로 1시간 거리인 국경도시 바젤에서 열리는 파스나흐트는 프로테스탄트 성향의 지방에서 열리기 때문에 유럽에서도 특이한 축제로 꼽힌다.
바젤 카니발은 기원이 14세기로 올라갈 만큼 오랜 전통을 자랑한다. 16, 17세기에는 종교적인 탄압도 없지 않았지만 꾸준한 전통을 간직하며 19세기 이후부터는 오히려 더욱 개선.발전돼 오늘의 화려하고 잘 다듬어진 아름다운 카니발 중의 하나가 됐다.
사순절 시작 전 화요일(마르디 그라)에 열리는 대부분의 유럽국가 축제와는 달리 프로테스탄트 지방답게 바젤 카니발은 오히려 금육의 사순절 시작 직후인 월.화.수요일 3일간에 걸쳐 꼬박 72시간 동안 열린다.
바젤 시민들은 여느 유럽 도시같으면 축제가 끝난후 자숙하고 참회하고 있을 시기에 잔치를 벌이고 흥겹게 노는 것이다. 축제가 열리는 시각도 매우 독특하다. 새벽 4시가 카니발의 개막 시각이자 폐막시각이다.
축제는 월요일 새벽 4시 어둠을 가르는 나팔 소리와 함께 등불행렬로 그 서막이 열린다. 어둠과 고요 속에 잠겼던 거리는 일시에 환호와 탄성으로 가득차고 고음의 피콜로(작은 피리) 소리와 북소리가 여명을 부른다.
아직은 깜깜한 새벽, 퍼레이드 참가자들의 대형 랜턴 불빛만이 유일한 이정표다. 이때는 축제행렬을 카메라에 담더라도 플래시를 쓰지 않는게 불문율이다. 플래시 불빛에 눈이 어린 선두행렬이 넘어지거나 다칠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적막하던 거리에 어디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갑자기 쏟아져 나왔는지 골목마다 가면을 쓴 시민들로 북적댄다. 거대한 등불행렬에는 북과 피리를 연주하는 사람들이 온갖 익살스럽고 풍자적인 그림이나 글들이 화려하게 그려진 램프를 머리에 장식하고 얼굴에는 크고 무시무시한 가면을 쓰고 있기도 하다.
날이 밝아서도 오만가지 형상의 가장행렬은 끝도없이 이어지고 인파도 자꾸만 늘어난다. 약 1만5천여명의 시민들이 무리를 지어 참여하는 축제 퍼레이드는 어둠이 내린 저녁 7시가 넘어서야 한풀 꺾인다.
화요일에는 어린이들의 화사한 행렬이 줄을 잇고 수요일에는 끝마무리 행렬이 또 이어진다. 행렬은 각양각색의 테마별로 진행되는데 행렬 맨앞의 거대한 램프를 보면 퍼레이드의 테마를 알 수 있다. 어떤 램프는 너무 커서 장정 여럿이 메고 가거나 케리어로 끌고가는 경우도 있다.
바젤 카니발에서 특히 주목할 것은 4~10명 정도의 소그룹 가면 연주단이다. 이들은 공식적인 행렬 전후나 저녘 무렵 라인강변의 옛 시가지를 피리와 북을 연주하며 배회하는데 정말 인상적이다.
유럽의 다른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쓸쓸하면서도 고즈넉한 정취로 라인강변의 게르만 냄새가 물씬 풍기는 놓치기 아까운 볼거리이다. 또하나 인상적인 것은 농부를 풍자적으로 묘사한 그룹 바기스(waggis)이다. 바기스는 행진을 하면서 구경꾼들에게 사탕을 던져 주는데 당근이나 감자.오렌지를 던져 주기도 한다.
바기스가 사탕 등을 던져 줄때는 제스처가 필요 이상으로 큰 것도 재미있고, 아이들이 '바기스 바기스...'를 외치며 따라다니는 모습도 흥미롭다. 때로는 사탕대신 꽃가루를 뿌려 온 거리가 형형색색의 꽃가루로 덮이기도 한다.
프랑스어로는 '발르'로 부르는 바젤시는 자전거로 프랑스와 독일.스위스간 통근이 가능할 정도로 교통의 요지이다. 지금도 프랑스의 뮬루즈와 독일의 프라이버그.스위스 바젤 등 3개 도시가 공동으로 국제공항을 사용하고 있을 정도.
그러나 수많은 국제회의와 각종 전시회가 연중 열리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다 보니 숙박비가 비싸기로 유명하다. 그래도 축제기간에는 방을 구하지 못해 역대합실을 서성대는 외국인들이 적지 않다.
외국인들의 내왕이 빈번한 강변의 국경도시여서인지 바젤 사람들은 약간 폐쇄적인 일반 스위스인들과는 달리 매우 개방적이다. 스위스의 라인강변에서 펼쳐지는 흥미진진하고 생동감 넘치는 축제. 바젤 카니발만의 독특한 정취 때문에 많은 관광객들이 바젤을 잊지 못한다.
바젤에서 조향래기자 swordj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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