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1시간 20분. 비디오 한편도 다 떼지 못할 짧은 시간. 현해탄을 건너는가 싶더니 어느새 세상이 바뀐다. 일본 규슈(九州) 북서부 나가사키 국제공항. 인천국제공항을 이륙한 비행기가 '육지속 바다'라 불리는 오무라만의 조그만 공항에 내렸다. 버스를 타고 남행하면 나가사키시(長崎市)까지는 1시간 30분이 걸린다.
일본열도의 커다란 섬 네개 중 최남단 규슈. 지도를 펼쳐보면 규슈는 중국과 한반도를 마주보고 있다. 2차대전 막바지 원폭투하지로 기억하고 있는 나가사키. 세계대전 당시 일본해군의 요충지로 애초에 투하 목표였던 사세보항이 구름에 가리자 대신 원폭의 비극을 겪어야 했던 곳이다.
우리에게도 지워지지 않는 지난 한 세기의 그림자. 그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가까운 과거, 그러나 이젠 되레 한국 관광객을 유치하려는 나가사키시 당국의 180도 달라진 자세에서 상전벽해란 이럴때 쓰는 말인가 싶다. 역사의 아이러니가 새삼스럽다.
풀과 나무도 자라지 않는 피폭지에서 평화도시로 새로 태어난 나가사키는 축제와 맛의 고장이다. 쇄국시대 일본유일의 해외창구였던 나가사키는 그래서인지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어우러진 색채가 농후하다. 이국의 낭만과 향기가 일본내 어느 도시보다도 독특한 곳이다.
평지가 적은 대신 언덕이 많은 나가사키는 집들이 산꼭대기까지 파고 든다. 그러나 양옥 건물이든 기와집이든 군더더기가 없이 일목요연하다. 일본 특유의 깔끔함을 단박에 느낄 수 있다. 이나사야마산(로프웨이를 타고 오를 수 있다) 야경은 보석상자를 열 때처럼 반짝이는 파노라마의 세계로 끌어들인다.
바로 아래 언덕에는 호텔이 밀집해 있다. 이곳 중 어느 한 호텔에 묵게 되면 석양과 야경, 일출을 하루 만에 모두 눈에 담을 수 있다. 일본 관광객들조차 이쪽 호텔을 고집하는 이유이다.
그라바 공원과 인공섬 데지마는 나가사키 기행에서 빠질 수 없는 곳. 시 남쪽 미나미야마테에 위치한 그라바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주택이 있다. 과거 시내에 있었던 6개의 명치시대 서양집을 모아 3만3천평의 부지위에 광대한 정원을 조성하였다. 연간 130여만명이 찾는다고 한다. 일본식 정원의 아기자기함이 공원 전체에 배어 있어 낯선 이방인도 편안안 쉼터로 인기를 끈다. 언덕배기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나가사키 항구 전경이 빠짐없이 들어온다. 1시간 정도 소요된다.
데지마는 1636년 기독교의 포교를 염려한 에도 막부가 포르투갈인을 격리하기 위해 만든 부채꼴 모양의 작은 인공섬이다. 1641년부터 1859년 일본 개항까지 이 섬에는 네덜란드의 동인도 회사가 있어 일본내에서도 유일하게 유럽을 향해 열려진 창 역할을 한 곳이다. 지난 93년부터 단장에 들어간 데지마는 현재 건물 5동이 복원, 공개되고 있다.
나가사키 평화공원. 1945년 8월 9일 11시 02분이라는 표지판만 없다면 이곳이 과거 원자폭탄이 떨어진 중심지인지 알 길이 없다. 눈을 감고 있는 평화기원상은 전쟁희생자의 명복을 빌고 있다. 하늘을 가리키고 있는 오른손은 원폭의 공포를, 수평으로 뻗은 왼손은 평화를 상징한다.
원폭낙하 중심지 부근에 원폭자료관, 평화회관, 시립박물관이 나란히 자리잡고 있다. 한국인 위령비는 한쪽 구석에 초라한 모습으로 남아 있어 숙연해진다. 무수히 내걸린 종이학도, 그 흔한 꽃다발 하나도 없다. 철을 녹이는 용광로 속보다 더 높은 열기와 일순간에 잿더미로 만들어버리는 파괴력 앞에 무수히 쓰러졌을 징용 한국인도 상당했을 것이라 생각하면 착잡해진다.
1893년 중국인들이 해외에서 유일하게 만든 공자묘는 매년 9월 성대한 축제가 펼쳐진다. 바로 옆 중국역대 박물관에서는 북경 고궁박물관의 수장품을 빌려 정기 교환전시회도 열리고 있다. 나가사키 펭귄수족관에서는 남극의 멋쟁이 펭귄을 직접 만져보는 체험도 할 수 있다.
▨호텔 이용 이렇게
현관 문을 들어서면 물수건과 따끈한 녹차가 손에 들려진다. 종업원의 과공(?)에 처음엔 엉덩이가 들썩 거린다. 체크 인 하기 전 다다미방인지 먼저 확인한다. 하루쯤은 다다미방에 자보는 것도 괜찮다. 일본 사람들의 특성상 손님이 요구하면 가급적 들어주려 애쓴다. 침대가 없는 다다미방은 잠자리에 들 때쯤 종업원 두명이 들어와 능숙한 솜씨로 이부자리를 봐준다.
욕실은 비좁은 경우가 대부분. 샤워하기에도 엄두가 안 날 정도. 호텔내 온천탕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온천탕에 몸을 푹 담그는 것은 좋으나 반드시 남.여탕 구분 깃발을 확인해야 한다. 호텔에 따라 기간이 다르나 남녀탕을 하루 걸러 바꾸기도 한다. 호텔내에서 유카다(일본 전통 잠옷) 위에 하오리만 입고 다녀도 결례는 아니다.
일본식 여관(료칸.전통 고급호텔)도 서비스와 설비가 호텔 못지 않다. 때로는 호텔보다 숙박료가 비싼 경우가 있다.
글 노진규기자 jgroh@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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