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가 난장판이라고?" '한국인에게 문화가 있는가', '한국인에게 문화가 없다고?' 등 일련의 저서에서 한국적인 것에 관한 도발적인 물음을 던져온 최준식 교수(이화여대.한국학)가 신작 '한국인은 왜 틀을 거부하는가-난장과 파격의 미학을 찾아서' (소나무.1만5천원)를 내놨다.
'한국문화는 난장판'이라는 불순한 부제를 통해 저자는 한국적 미학은 파격과 자유분방함이라고 축약한다. 격식을 벗어나 자유를 만끽하려는 것만큼 보편적인 예술가치가 또 있을까. 그럼에도 '한국적'이라는 수사는 무슨 의미일까. 저자는 유달리 '난장판'을 사랑하는 기질이 우리의 무속신앙(무교)에서 유래한다고 말한다. 내쳐 무교(巫敎)야말로 한민족의 영원한 종교라고 일갈한다.
굿판을 보라! '카랑카랑한 타악기 연주에 이어지는 무당들의 도약춤은 정갈한 춤이라기보다는 길길이 뛰는 매우 원시적인 몸짓'이다. 굿판이 무르익어가면 구경온 이나 무당이나 한데 엉켜 춤을 추는 난장판이 펼쳐진다. 뒤죽박죽이다. 이쯤되면 굿은 성스러운 종교 의례라기보다 우리네 일상생활이 그대로 농축된 것 같다. 한국인들의 술판도 난장판으로 끝나는 때가 많다.
술을 마셔도 적당히 마시지 않고, 인사불성이 될 정도로 마셔야 잘 마셨다고 한다. 한국인들은 매일 밤 굿판을 벌이는 것이다. 좁고 소란한 관광버스 통로에서 추는 '관광버스 춤'은 거의 무형문화재감이다.
"어쩌면 이리도 오늘날 우리 모습은 무당기질을 쏙 빼다박았을까".저자는 자유분방함이야말로 우리 전통을 이해하는 열쇠라고 한다. 자유분방함은 '인간 고유의 원초적인, 비인위적인 성향에 충실하려는' 기질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태생적으로 질서가 잡혀 있고, 절도가 있는 딱딱한 모습을 싫어하는 것 같다. 질서속에서는 질식할 것 같은지…. 일상적인 질서의 세계를 가능한 한 빨리 탈피해서 자유로운 무질서 상태로 내빼려고 한다'.
자유분방한 미의식은 우리 전통문화 속에서 익살과 해학의 미감을 만들어냈다. 일종의 삐딱함이다. 진도 지방 상여놀이의 일종인 '다시래기 놀이'에서 놀이패들이 상주에 농을 건넨다. "방안에서 밥만 축내던 당신 아버지가 죽었으니 얼마나 얼씨구 절씨구 할 일이요". 한국인의 이러한 파격적 익살성 또한 샤머니즘적인 자유분방함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저자는 자유분방함의 예로 우리 전통음악에서의 '즉흥성'을 든다. 이전 선비들은 음악이 빨라져 감정이 격해져도 그것을 억누르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예인들의 말을 빌리면 '사람은 있으되 나(개성)가 없으면 이는 꼭두각시이지 산 사람이 아닌'것이다.
스승의 연주를 그대로 재현했노라고 항변하는 제자에게 스승은 '그건 어제 소리지 오늘 소리가 아니야'라고 꾸짖는다. 소리에 녹아든 명창과 고수가 합일하는 순간, 탄식과도 같은 액스터시(황홀경)를 맛본다. 신명은 짜여진 틀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음악에서의 즉흥성이 두드러진 것 역시 한국인들이 무당처럼 망아경(忘我境) 속에 쉽게 빠질 수 있는 성향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리라.
저자는 소위 한국적인 미는 조선시대 후기에 태동했다고 전제한다. 신분제 붕괴와 경제력 향상으로 기층민(민중)의 문화가 주류 대열에 올라선 것이다. '세련.엄격'한 상층문화속에서 끈질긴 생명력을 이어온 '소박.일탈'한 기층(서민)문화가 조선후기에 와서야 봇물처럼 터져나온 것이다.
자유분방함은 음악에서는 즉흥성으로, 그림이나 조각 무용에서는 무작위성이나 파격 일탈 해학으로 나타난다. (장승의 얼굴은 얼마나 우습도록 제멋대로인가. 또 서투른가).
한국문화는 왜 난장판인가. 한국인의 난장스러움은, 자유분방함은 한국인 유전자마다에 새겨졌는지도 모를 일이다. 난장스러움의 근거는 말할 것도 없이 우리 민족의 영원한 종교인 샤머니즘이라고 마침표를 찍는다.
책 말미에서 저자가 남긴 자기반성적인 독백의 여운은 길고 진하다. "(무교 등 기층문화에 대한 열렬한 신봉에도 불구하고) 유교와 같은 상층문화는 기층문화만 존재했다면 방종과 저질문화가 판을 치게 될 것을 미리 예방하는 기능을 하지 않았을까. 과연 우리시대에는 조선시대 유교처럼 시대를 견인할 만한 세계관이 있는가"고 되묻는다.
최병고기자 cb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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