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있었던 박근혜 의원의 한나라당 탈당과 함께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대회의 개막으로 2002년 대통령 선거정국이 본격적으로 열리고 있다. 앞으로 9개월 정도 남은 대통령 선거때까지 정국은 국민들이 예측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전개되어 나갈 것이다.
과거와 다름없이 정치세력들간에 이해득실을 따진 이합집산은 국민들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선거가 있을 때마다 우리는 후보의 인물 됨됨이와 후보의 소속 정당의 공과 및 공약을 꼼꼼히 살펴서 합리적으로 투표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선거는 반드시 이성적인 방향으로만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유권자들의 미묘한 정서라든가 그때 그때의 바람몰이가 뜻밖의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예측난망의 선거정국에 출정하는 후보들은 제각기 당선을 보장받고 싶어한다. 낙선하고 싶은 후보는 아무도 없다. 그래서 후보들은 저마다 자신의 당선을 암시하는 단서와 논리를 찾아내는 데 분주한 듯하다.
선거가 이성적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해서 후보자가 자신의 자질과 공약, 그리고 소속 정당의 정책이나 공약은 제쳐둔 채 주술적 요소나 비합리적인 요소에 매달린다면, 설혹 그가 당선된다 하더라도 공직자로서 그가 보여줄 활동은 유권자의 기대에 못미칠 것이 뻔하다.
그런데 이번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선거에 나설 후보들을 둘러싼 온갖 주술적 요소들이 설왕설래하고 있다. 이 나라의 유력한 언론이라고 자처하는 신문들은 무슨 신통한 예측력이나 있는 것처럼 출마예상자의 평생 사주가 어떠니, 올해 운세가 어떠니 하는 기사를 거리낌없이 게재하고 있다. 마치 대통령이 될 사람은 이미 사주와 운세가 그렇게 되어 있는 양 국민들을 현혹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적지 않은 후보들은 죽은 조상에 당선의 효험을 기대하는 듯한 행동을 보여주고 있어 지각있는 국민들을 어리둥절하게 하고 있다. 죽은 아버지의 후광에 힘입어 대통령이 돼 보겠다고 나서는 경우는 그래도 애교있는 행동 정도로 봐준다고 치자. 조상의 묘를 은밀하게 소위 명당이라고 하는 곳으로 이장하는 후보예상자들은 도대체 어떤 생각에서 그렇게 하는지 묻고 싶다.
죽은 조상의 묘를 명당 자리로 옮긴 후보가 만약 대통령이 되었다고 가정해보자. 그는 조상의 음덕으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고 생각하여 당선되는 순간부터 국민보다 조상섬기기에 더 바쁠지 모른다.
당선자와 같은 조상을 모시는 후손들 가운데에는 그들이 하늘로부터 선택받은 씨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나올 것이다. 심지어는 이 나라가 마치 그들 씨족의 왕국이 된 양 착각하고 행동하는 사람들도 나올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는 부정부패 중 가장 전형적인 양상은 누가 뭐래도 대통령 친인척들의 부정부패이다. 현 정권은 물론이고 역대 어느 정권에서도 대통령 친인척의 비리가 끊이지 않고 일어났다.
하나같이 대통령 친인척들이 대통령의 권력을 빙자하여 온갖 비리를 자행해 왔다. 때문에 이 나라 최고권력자가 가장 경계해야 할 일 중의 하나는 바로 혈연에 바탕한 연고주의이다. 친인척과 얼마나 냉정하게 거리를 둘 수 있는가는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 위한 전제조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대통령이 되기 위해 조상묘를 소위 명당으로 이전하는 사람들은 어쩌면 혈연적 연고주의에 빠져들 가능성이 아주 높은 사람들일 것이다. 디지털시대라는 21세기에 연고주의에 기울어 친인척 뒤봐주기에 바쁜 대통령을 뽑아서야 어찌 이 나라의 장래가 밝을 수 있겠는가.
제발 이번 대통령선거에서는 제대로 대통령을 뽑자. 조상섬기기와 친인척 돌봐주기에 바쁜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을 제대로 섬길 줄 아는 대통령을 뽑을 수 있도록 유권자들의 이성적 판단과 행동을 기대해 본다.
백승대(영남대 교수.사회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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