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정리 수신호 자원봉사자는 교향악단의 지휘자와 같습니다. 우리들의 손짓 하나가 그 날의 교통흐름을 결정하죠".지난 87년 대구시 중구 모범운전자회에 가입, 지난 15년간 '인간신호등'으로 봉사해 온 개인택시 운전기사 김재형(47)씨.
78년 처음 운전대를 잡은 그는 택시회사에서 10년을 기계처럼 일만 하다 삶의 보람을 찾기 위해 교통정리 수신호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김씨에게 수신호를 배워 지난 96년부터 봉사활동을 시작한 박상길(33)씨는 모범운전자회의 몇 안되는 총각 중 하나.처음 도로 한가운데 섰을 땐 운전자들과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던 그지만 어느덧 베테랑이 됐다. 이제 박씨의 수신호 실력은 '사부' 김씨도 한 수 접어 줄 정도.
두 사람은 "정체가 아무리 심해도 일단 수신호 자원봉사자들만 출동하면 꽉 막혔던 도로가 시원하게 뚫린다"고 했다.법인·개인택시, 시내버스 운전기사들로 구성된 중구모범운전자회 자원봉사자는 모두 380여명. 김씨와 박씨처럼 매일 교통정리 수신호 봉사활동을 펴는 고정멤버만 30여명에 이른다.
자원봉사자들은 중구 중앙로·서성로·공평 네거리 등지에서 오후 5시부터 7시까지 매일 봉사활동을 펼치고 대규모 집회, 신호등 고장, 교통 사고 등으로 정체가 특히 심한 곳은 수시로 봉사활동을 벌인다.
이들은 또 교통봉사를 위해 사비를 모아 무전기 26대까지 구입했다. 귀성차량들이 몰려드는 추석, 설 같은 때 상호 교신을 통해 시내 전지역의 교통 흐름을 파악, 신속하게 대처하기 위해서다.
8년째 수신호 봉사활동 중인 이윤기(43)씨는 "아내는 자기 돈까지 들여가며 봉사할 시간에 '한 푼이라도 더 벌 생각을 하라'고 성화지만 어쩌다 고맙다며 따뜻한 미소를 지어주는 시민들 때문에 이 일을 그만둘 수 없다"고 했다.
물론 이들에게 보람만 있는 것은 아니다. 봉사자들은 "자기만 먼저 빠져나가려는 얌체 시민들이 '당신이 뭔데…'라며 삿대질할 땐 왜 이 길을 택했는지 후회할 때도 있다"고 입을 모았다. 무조건 돌진하고 보는 얌체 차량들 때문에 다치는 자원봉사자들도 한 두명이 아니라는 것.
대구 경찰청 관계자는 "도로교통시행규칙상 모범운전자는 경찰관을 보조해 교통안전 봉사활동에 종사하는 사람으로 규정돼 모범운전자의 교통수신호는 교통경찰과 똑 같은 효력을 가진다"며 "원활한 교통흐름을 위해 이들의 수신호를 잘 따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구경찰청에 따르면 지역 모범운전자회는 각 구·군에 하나씩 모두 8곳으로 회원 수는 2천300명에 이른다.
모범운전자연합회 박정훈(47) 회장은 "기계처럼 매일 차안에서 시간을 보내는 운전기사들이 자원봉사를 통해 또 다른 삶의 의미를 찾고 있다"며"자원봉사자들은 다가오는 월드컵, U대회 등에서 더욱 눈부신 활약을 펼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준기자 all4you@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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