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절대권력의 언론탄압

프랑스 나폴레옹의 언론통제는 어느 지배자보다 심했다. 자신에게 비판적인 신문사는 결코 그냥두지 않았다. "신문사들을 손 보시오. 신문에 좋은 기사만 쓰게 하시오. 혁명은 끝났으며 프랑스에는 오직 하나의 정당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편집자와 기자들에게 주지시키시오.

내 뜻에 어긋나는 기사를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고 그들에게 전하시오". 1804년 당시 치안장관인 조제프 푸세에게 편지형식을 빌려 내린 지시다. 나폴레옹의 언론제어는 계속돼 1810년에는 각 주에 1개 신문사만을 허가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그 다음해에 친여신문 4개사만 남겨두고 파리의 신문 모두를 폐간하고 재산까지 몰수해 아예 언론비판의 싹을 원천 봉쇄한 것이다.

▲세계 언론탄압의 시초는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국고대 진(秦)나라 진시황제가 BC213년에 단행한 분서갱유(焚書坑儒)를 세계최초의 언론탄압으로 친다. 진나라와 자신의 치적에 대해 찬양하지 않은 책을 석달열흘간 모두 불태웠다.

이듬해인 BC212년에는 자신의 통치행위를 비판하고 고개를 치켜드는 요새 말로 깨어있는 학자 등 460명을 구덩이에 밀어넣어 생매장했다. 이런 만행은 승상 이사(李斯)의 지위보존술수 등 왜곡된 보고가 한 원인이라고 한다지만 진시황제의 절대권력 유지차원의 철퇴다. 생각하지 말고, 주는 대로 먹고, 시키는 대로 하라는 절대권력자의 언로(言路) 봉쇄가 아닌가.

▲우리나라의 최초 언론탄압은 조선조 선조때 일어났다고 언론학계는 분석한다. 조정인사나 정책 등을 실은 조보가 발행된 사실을 안 선조는 조보(朝報)를 펴낸 백성(百姓) 수명을 유배 등 조치했다고 한다.

선조 10년, 1577년 발생한 이 일로 해서 우리민족의 근대 신문 발행은 300여년 뒤에야 이루어진다. 우리나라의 발전이 그만큼 뒤처지고 일본에 침략당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는 비약적인 논리를 펴는 사람도 있다. 역사자성론(歷史自省論)이다. 어쨌거나 나라가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허물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절대권력일수록 언론에 대해 적대적(敵對的)인가 보다. 히틀러까지 들먹일 것도 없이 최근의 세계 언론상황을 봐도 이는 들어맞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태국정부가 최근 푸미폰 국왕 등 왕실관련 보도내용을 문제삼아 영국의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를 배포중단하고 홍콩기자 2명을 추방했다.

이태리 국민들이 벌인 베를루스코니 총리의 방송장악을 규탄하는 반정부 시위는 절대권력으로 치닫는 듯한 총리에 대한 저항이다. '국민의 정부' 언론정책도 이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는다. 아태재단 전 상임이사 자택에서 언론문건이 나올 정도면 언론 길들이기에 총력을 기울였다는 또다른 증거가 아닌가.

최종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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