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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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50대 사진학과 대학생 민웅기씨"단 한번만이라도 아버지의 얼굴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제가 2살 때 돌아가셨는데 사진 한 장 남기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떠올리는 아버지의 모습은 늘 상상일 뿐입니다. 어쩌면 아버지의 진짜 모습과 하나도 닮지 않았는지도 모릅니다". 늦깎이 사진작가 민웅기(51)씨가 사진을 배우기 시작한 오래된 이유다.

아버지를 일찍 여읜 탓에 초등학교를 겨우 졸업한 민웅기씨는 48세와 49세에 검정고시로 중학교과 고등학교 과정을 마쳤다. 그리고 50세에 아들뻘 되는 학생들 틈에 섞여 계명 문화대학교 사진 영상학과에 입학했다. 내년에는 4년제 대학교에 편입해 사진을 좀 더 깊이 배우기로 단단히 작정하고 있다.

땅뙈기 하나 없는 홀어머니 슬하에서 초등학교를 8번이나 옮겨다녀야 했던 사람. 작은 체구, 작은 목소리, 약해 보이는 얼굴…. "엿장수를 해도 도시에 나가 먹고살아라, 너처럼 허약한 몰골로는 농사지어 먹고살기도 틀렸다". 초등학교를 겨우 졸업한 그에게 할아버지가 남긴 말씀이었다.

기억해내지 못할 아버지 모습을 그리워하기 시작한 소년시절부터 그는 사진을 동경했다. 그러나 끼니를 때우기도 어려울 만큼 가난한 그에게 사진은 사치였다. 할아버지의 말씀을 좇아 16세 때 도시로 올라온 그는 극장 영사실 보조원, 그릇가게, 유리가게, 가방점 판매원을 거쳐 알루미늄 공장에 취직했다.

라면을 배불리 먹을 수 있다는 한가지 이유로 내키지 않던 알루미늄 공장까지 흘러들었던 그였다. 20세를 넘길 무렵 양복점 기능공이 됐다. 퇴근 길 쇼 윈도 너머에서 줄자를 목에 걸치고 가위질을 해대는 재단사를 본 후 알루미늄 공장을 그만두었다. 익숙한 솜씨로 가위를 놀리는 재단사가 한없이 부러웠던 것이다.

그리고 변두리 양복점 기능공에서 동성로 의상실 재봉사까지. 부지런하고 꼼꼼한 천성덕분에 그는 1980년대 동성로에서 꽤나 유명한 미싱사가 될 수 있었다. 대학마다 의상학과가 막 생겨나던 무렵이었다. 학력을 좀 갖춘 엇비슷한 동료들은 대학 시간강사로 나가기도 했다.

민씨는 결혼 후 빚을 얻어 자신의 가게를 냈고 나름대로 돈도 벌었다. 맞춤복 시대가 가고 기성복 시대가 왔을 즈음엔 브랜드 가게를 열 수 있었다. 직원들에게 모두 맡겨 두기는 했지만 그는 지금도 'E랜드' 매장을 운영한다.

기독교 정신을 중시하는 'E랜드'는 일요일엔 문을 열지 않는다. 그 덕에 민씨는 본격적으로 카메라를 잡을 수 있었다. 30대 중반을 훌쩍 넘긴 나이였다.

민웅기씨의 사진엔 기교가 없다. 화려하지도, 튀지도 않는다. 그는 흑백사진을 고집한다. 그리고 철저하게 사실만 담으려 애쓴다. 언젠가는 잊혀질는지도 모를 신천의 모습을 꼼꼼히 담느라 1년 이상 신천에 파묻혀 살기도 했다.

산중턱 발원지부터 희미하게 흩어지는 끝자락까지 모조리 담았다. 대구사람들이 신천의 옛 모습을 그리워할 때쯤이면 세상에 내놓을 작정이다. 민씨 자신이 아버지를 그리워할 만큼 자랐을 때 아버지는 이미 없었다. 그는 그 바래지 않을 아픔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다.

27세 때부터 조금씩 사진을 찍어온 민씨는 많은 수상경력을 가졌다. 홍콩국제사진전, 백제사진대전, 미국국제사진 공모전 슬라이드 부문 등 지금까지 250여 점의 크고 작은 수상작품을 냈다. 그러나 그를 아는 사람은 드물다. 신문에도 텔레비전에도 얼굴을 내밀어 본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민씨는 가르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지난 3년 동안 선배 사진작가와 함께 1주일에 6시간씩 무료 사진 교실을 열어왔다. 지금까지 배출한 제자는 모두 200여명. 큰돈을 들이고 땀흘려 체득한 자신의 기술을 무료로 가르쳐준다.

"제대로 된 사진을 아는 데 너무 많은 돈과 긴 세월을 소비했어요. 다른 이들은 저와 같은 시행착오를 겪지 않고 더 나은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돕고 싶어요". 250점을 수상한 작가답지 않게 민씨는 아직도 실수가 많다며 겸손해 한다.

그는 실수를 조금이라도 줄여나가기 위해 스스로 열심히 공부하고 가르칠 작정이라고 덧붙였다. 제도권 공부를 다 마치는 3, 4년 후에는 좀 더 크고 제대로 된 무료 사진교실을 열 계획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조두진기자 earf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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