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자노트-입시정책 엠바고

교육부와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12일 2003학년도 대학입시 전형요강을 출입기자, 입시관련기관 등에 배포하면서 '14일자 조간용 보도자료이므로 엠바고에 유의하라'고 못박은 것이 교육계에 알려져 지탄을 사고 있다.

게다가 사전에 자료를 전한 기관들에게 '타인에게 배포한 것이 확인될 경우 엄중 처벌하겠다'고 경고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교육정책이 누구를 위한 것이냐는 쓴소리도 쏟아지고 있다.

언론계에서 '엠바고'(embargo)란 기자와 취재원 간에 약속된 '보도 시점 제한'을 의미한다. 정부기관이나 검찰, 경찰, 기업 등을 취재하는 기자들이 기밀 유지나 공무상 불가피한 사유로 인해 일정 시점까지 기사를 쓰지 않는 관행이다.

그러나 최근 기자들 사이에서는 유괴나 납치 사건, 피해자의 인권 보호 등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를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가 강하다.

교육부가 이번에 내놓은 내년도 입시 요강은 미리 발표돼도 아무런 피해가 생길 여지가 없는 내용이다. 하루라도 빨리 발표될수록 전국 수십만 수험생과 학부모, 교사들에게 더 도움이 되는 자료다.

특히 내년도 입시 요강은 교육부가 작년 입시에서 나타난 학기 중 혼란을 막기 위해 지난달 말까지 발표하기로 약속했던 것이다. 발표가 늦어짐에 따라 상당수 고교들은 이달초 예정했던 진로 상담이나 개인별 대학 지원 전략 수립 등을 미룬 채 교육부만 쳐다보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도 진작 만든 보도자료의 발표 시점을 며칠씩이나 미룬 채 '엠바고'를 걸고 경고까지 내던진 것은 교육부의 정책 방향이 일부 언론사들의 입맛에 맞추고 보자는 구태를 벗지 못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물론 며칠 전에 보도자료를 받아놓고도 결코 엠바고 사유가 될 수 없음을 잘 아는 기자들이 보도 시점을 느긋이 맞추는 관행도 좋은 소리를 듣기는 어렵다.

"오락가락하는 우리나라 입시 정책은 교육부가 만들고 언론이 조장해온 최악의 작품"이라는 국민들의 힐난에 교육부와 기자들은 과연 무슨 대답을 내놓을 것인가.

김재경기자 kjk@imaeil.com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