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신경제 상품 문화(12)-이탈리아 베네치아 까르네발레

스위스 취리히에서 밀라노를 거쳐 7시간 30분을 기차로 달려 도착한 이탈리아의 북부도시 베네치아(Venezia). 산타루치아 역사를 빠져나오자 눈앞에 펼쳐지는 수상도시의 환상적인 전경이 오랜 기차여행의 피로를 단숨에 씻어준다.

연간 1천만명이 다녀간다는 운하와 광장 그리고 다리로 만들어진 이 작은 도시에 매년 2월이면 화려하고 경이로운 가면축제가 열린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까르네발레'(Carnevale)로 부르는 베니치아 카니발.

산타루치아역에서 수상버스로 40분거리인 축제의 중심부 산마르코(San Marco) 광장에는 평소 터줏대감으로 군림하던 비둘기 떼조차 자리를 피해야 할 만큼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인파로 북새통을 이룬다.

축제기간 산마르코 광장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형형색색의 가면으로 치장한 사람들이 지중해의 물결처럼 출렁댄다. 과연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가면축제의 풍경이다. 가면축제의 묘미는 축제기간 가면을 쓰고 있는 동안만은 모든 사람들이 신분과 차별로부터 해방된다는 것이다.

빈부와 남녀의 차별도 가면이란 매개체를 통해 초월하며 누구라도 원하기만 하면 귀족이나 예술가, 교황에서 왕자.공주에 이르기까지 자신들의 꿈과 지위를 마음껏 실현시킬 수 있다. 그것이 가면의 매력이요 가면이 가진 고유의 역할이기도 하다.

그래서 베네치아 시민들은 축제를 사랑하고 자랑하며 해마다 돌아오는 축제를 위해 가족이나 친구끼리 저마다 독특한 의상과 가면을 준비하는데 여념이 없다. 축제 준비에 관한한 시 당국과 시민이 한마음이 된다.

이렇게 해서 카니발이 열리면 노인들과 어린이들까지 일가족이 모두 중세의 귀족으로 변장한 채 우아하게 산책하는 진풍경을 드러내기도 한다. 가면을 미리 준비하지 못한 관광객들은 수상버스 역에서 광장에 이르는 주변 상점에서 갖가지 가면과 모자 등을 구입해서 즉석 변장을 하고 축제행렬에 참여하기도 한다.

카니발 마스크는 베네치아의 명물로 시내 곳곳에서 이를 기념품으로 구입할 수도 있다. 베네치아 축제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볼거리는 산마르코 광장으로 들어서기 전에 만나는 '탄식의 다리'.

탄식의 다리는 감옥과 연결되는 통로로 죄수들이 감옥에 갇히기 전 마지막으로 햇빛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작은 창살로만 내다보이는 푸른 파도를 뒤로한 채 감옥으로 향했던 죄수들의 심정이 오죽했으랴.

이 다리는 희대의 바람둥이로 유명한 카사노바가 한때 감옥에 갖히면서 건넜다 해서 더 널리 알려졌다. 그래서 축제기간 흔히 눈에 띄는 양 옆이 접힌 검은 모자를 '카사노바 모자'로 부르는데, 남자 관광객들이 특히 좋아한다고 현지 사람들은 전한다.

축제에는 민속오락과 황소사냥, 곡예사의 묘기, 폭죽 터트리기 따위도 포함돼 있다. 광장과 거리의 작은 골목은 가장 무도회로 넘친다. 베니스 축제는 단순한 지역적 행사가 아니라 매년 전세계에서 수백만명의 관광객이 몰려드는 세계적인 축제이다.

이곳은 삶을 즐기는 방법을 가르치는 보세구역이기도 하다. 규칙과 제한이 없다. 축제는 평화롭게 규칙을 어기는 것이 허락되는 순수한 휴식기간이기 때문이다. 개인주의에 대한 인식을 고양시키고 위장한 몸에 익명성을 허락함으로써 영혼을 해방시켜 주는 것이다.

산마르코 광장은 축제의 심장부로 고동치는 축제의 열기를 여러 외진 지역으로까지 전달한다. 고풍스런 건물들 사이로 150여개의 운하와 400여개의 다리를 따라 음악과 촛불로 이루어진 축제의 마술적 분위기가 신화처럼 퍼져나간다.

축제를 찾은 방문객들은 유명한 칼레(Calle.베니치아의 골목길)를 따라 과거의 인물들을 만나게 된다. 그 중에는 가수와 행상인, 님을 기다리는 여인, 광대 등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마치 18세기 프란체스코 과르디와 안토니오 카날레토의 그림 속에서 새 새명을 얻기 위해 세상에 나온 사람들 같다.

16세기의 베네치아 축제는 파괴와 죽음, 재생과 부활의 묘사를 통해 생겨난 일종의 심리적 해방을 제공하기도 했다. 비록 짧은 축제기간이지만 하층민에게 계급적 질서가 없는 낙원의 경험을 허락함으로써 사회변화의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축제가 절정에 이르는 날. 산마르코 광장은 발디딜 틈조차 없다. 이때는 이곳이 거대한 가면무도장으로 변한다. 지평선에 저녁해가 붉게 물들면서 축제의 열기는 밤으로 이어지고, 베니치아 시에서 준비한 불꽃놀이가 수상도시의 하늘을 수놓는다. 산마르코 광장에는 성별도 빈부도 신분의 차이도 없다. 오로지 축제에 취한 사람과 카니발의 열정과 환상이 있을 뿐이다.

베네치아 카니발은 위대한 기적을 지속적으로 허용해 왔다. 그것은 축제 참여자들에게도 독특한 느낌을 제공한다. 그 느낌은 바로 자유와 행복에 관한 것이다. 파격과 무질서의 느낌이면서 궁극적으로는 삶 그 자체에 대한 호흡이다. 이것이 물의 도시 베네치아가 수세기 동안 '라 세레니씨마'(평온의 도시)를 지속해온 비결인지도 모른다.

베네치아에서 조향래기자 swordj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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