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 서원천 둔치에서는 요즘 소싸움이 한창이다. 우장(牛場.소 싸움장) 주변에 2만평 크기의 널찍한 주차장을 만들어 놓았지만 단번에 차를 댈 수 있는 관람객은 운이 좋다.
소싸움장내 관람석도 사정은 다를 게 없다. 한 판 거친 경기가 끝나면 사람들은 썰물처럼 관람석을 빠져나가지만 정작 관람석엔 빈자리가 없다. 지난 주말엔 5만명, 일요일엔 7만명의 관람객이 이곳을 찾았다. 평일에도 3만5천명 이상의 관람객이 북적댄다.
싸움소와 함께 경기장에 선 주인들은 연방 고함을 친다. "가자! 가자!" "쳐라! 쳐라!" 소 주인들의 가슴에 달아둔 마이크는 머리를 맞댄 싸움소의 거친 호흡을 그대로 관중석으로 옮겨놓는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던 소들은 주인의 고함소리에 또다시 상대 소를 밀어붙인다. 싸움소들의 울퉁불퉁한 근육이 울컥울컥 떨린다. 거친 호흡에 커다란 배는 풍선처럼 부풀었다 줄어들고 길게 뽑아낸 혀에서는 침이 뚝뚝 흘러내린다. 머리를 맞댄 채 가만히 있는 듯 보이지만 놈들은 밀리지 않으려 죽을 힘을 쓰고 있다.
경기장 밖은 영락없는 시골 큰장터다. 똑같이 흰 천막으로 지붕을 얹고 울긋불긋한 깃발까지 세운 식당들은 전장에 나선 옛 병사의 진(陣)을 닮았다. 식당마다 국솥이 설설 끓고, 엿장수의 노랫가락은 지칠 줄을 모른다.
전국에서 모여든 장사꾼들은 저마다 갈고 닦은 묘기로 손님을 끄느라 정신이 없다. '중국산이 밀려온다'는 커다란 플래카드를 내걸고 애국심을 찔러 약을 팔려는 사람도 있다.
대회 주최측이 허가한 식당과 살며시 서원천 둔치를 찾아든 갖가지 난전을 합치면 줄잡아 130여 개. 미니스커트 입고 마이크와 스피커로 무장한 상품 홍보 아가씨들도 눈에 띈다. 하반신에 고무 튜브를 걸친 장애 걸인은 땅에 엎드린 채 쉬지 않고 구걸 소쿠리를 민다.
소싸움을 구경하러 멀리서 찾아왔다는 한 노인은 일행을 잃어 울상이다. "버스 있는 데로 가야하는데, 버스 있는 데로 가야하는데…". 노인은 버스로 단체관광에 나섰던 모양이다.
그는 지나는 이를 붙잡고 꼬깃꼬깃 접힌 종이를 내민다. 안내인의 휴대폰 번호가 적혀있다. 노인과 아이들이 보호자를 잃는 일이 잦은가보다. 싸움장 밖엔 아예 미아보호소도 큼직하게 설치해놓았다.
청도 소싸움장을 찾은 관람객에겐 심심할 틈이 없다. 경기 사이에 중국 기예단과 청도군의 온누리 예술단이 축하 공연을 연다. 개막식 때는 미국인 프로 불파이터(bullfighter)가 맨손으로 황소와 대결을 벌였고 한국판 로데오 경기도 열렸단다.
투우미술전과 소싸움 사진전, '옛날 옛적에'(추억의 인형전), 짚 공예전 등도 아슴푸레한 농촌의 옛 추억을 자극한다.
식당, 난전, 엿장수, 청원경찰, 소방대, 훌쩍이는 아이, 사진작가, 무허가 난전 철거반, 이에 맞선 상인…. 온갖 유형의 사람들이 들끓는 이곳에서 사람들은 묘기를 부리거나 고함을 치거나 혹은 지친 얼굴로 담배를 피워 문다. 소들은 우장 안에서 싸우고 사람들은 바깥에서 싸운다.
조두진기자 earf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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