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후 대구문화예술회관. 전시실에서 막바지 디스플레이에 열중하던 섬유조형가 차계남(49)씨가 활달한 웃음으로 기자를 맞았다.그의 검은색 옷이 그가 만든 작품 빛깔과 무척 닮아 있다는 게 인상적이었다. "원래 검은색을 좋아하지…. 강인하고 비타협적인 느낌을 주기 때문인가?" 20여년간 일본, 파리 등에서 작품활동을 하면서 명성을 쌓아온 이력에 비추어, 그와 검은색의 상관 관계를 짐작할 수 있었다.
14일부터 열리는 대구국제섬유박람회(Preview in Daegu) '대구애뉴얼&국제섬유디자인교류전'의 특별초대작가인 그가 내놓은 작품은 단 3점. 적은 숫자임에도, 검은 빛깔이 84평의 널찍한 공간을 완벽하게 점유하고 있었다. 얼핏 시꺼멓고 덩치 큰 섬유뭉치로 보일 수 있지만, 전시장을 한바퀴만 돌고나면 작품이 뿜어내는 그 기세와 위력에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전시장 입구에는 섬유 기둥(높이 2m)7개로 이루어진 작품이 육중한 모습으로 관객을 맞았고, 그 가운데에는거대한 풀밭마냥 널찍한 평판위에 섬유 실이 규칙적으로 솟아있는 작품, 뒤편에는 성인남자보다 조금 높은 높이에 거대한 벽처럼보이는 작품이 전시됐다.
작품 제목은 모두 무제(無題)였다. 관객들이 맘대로 생각하고 느낄 수 있도록 한 배려라고 했다. 현대미술에서 자주 언급되는 미니멀아트(단순화의 예술)와 메시지가 자연스레 결합된 형태였다."세계 어느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나만의 작품이지…. 그 힘든 작업을 누가 따라할 맘을 먹겠어…". 단순한 자신감이 아니었다. 치열한 고민과 노력을 해온 작가만이 내뱉을 수 있는 말이 아니겠는가. 그의 작업 과정은 지난하다.
멕시코산 '사이잘 삼'을 염색하고실 하나 하나를 특수아교로 붙인후 판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모두 그의 손을 거친다(요즘은 조수 2명과 함께 일한다). "작업과정이 워낙 어렵고 덩치가 크기 때문에 1년에 단 한 작품밖에 할 수가 없어. 그래서인지 작품을 내놓을 때면 마치 내 아이를 낳았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아…(물론 그는 독신이다)".
그는 80년 효성여대(현 대구가톨릭대)를 졸업하고 일본에서 작품활동을 시작, 신쇼어공예전 지사상(88년) 오사카조각트리엔날 은상(92년) 등을 받았다. 일본에서 작가로서의 '안정된 위치'를 굳힌 그는 97년부터 미지의 땅을 개척한다는 기분으로 파리로 건너가 활동하고 있다. 90년대이전 작품들은 다양한 형체와 형형색색의 염색에 주력했다면, 그 이후 작품들은 현대미술의 흐름에 맞춰 단순하고 둔탁한 듯한 형태를 보여주는 게 특징.
"무엇보다 대구시 공무원들의 안목에 놀랐어. 난해한 작품을 하는 작가에게 큰 방(전시실)을 통째로 내주고, 특별초대작가로 불러준 것만 봐도예전과 많이 달라졌다는걸 느껴…".
박병선기자 l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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