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평생 그린 나무 숫자가 얼마나 될까요?" "글쎄 그거야 알수 없지. 수천, 수만 그루쯤 되겠지…".대구시 남구 봉덕동 원로화가 서창환(80)씨의 화실에는 온통 나무로 가득했다. 이곳저곳 놓여있는 캔버스마다 적게는 10여 그루, 많게는 30, 40그루의 나무가 들어 있었다.
그것도 앙상하고 가느다란 나무가 대부분이다. 힘찬 생명력을 보여주는 나무가 아니라, 말라죽기 직전의 모습이다. 대개 겨울을 배경으로 한 탓에 스산하고 애잔한 느낌을 준다. 그림 빛깔도 보라색이다. 전체적으로 오묘하고 신비한분위기를 던져 준다. 30여년간 나무만 그려온 내력을 그에게 들어봤다.
"70년대 초반쯤인가 겨울에 팔공산에 오른 적이 있었지. 나무들이 아사 직전의 헐벗은 몸을 드러내고 봄을 기다리고 있었어.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은 죽고나면 모든게 끝나는데, 나무는 끊임없이 소생한다는데 생각이 미쳤지. 그때부터 인간의 생노병사, 윤회, 종교 등 철학적인 주제를 떠올리며 나무를 화폭에 담기 시작한거야".
얼마전만 해도 굵고 통통한 나무를 꽤 그렸는데 나이가 들수록 가늘고 마른 나무만 그리게 된다는 얘기도 했다.그는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고 했지만, 기자는 그 이유를 대충 알 수 있을 듯 했다.그가 50, 60년대에는 비구상 작품에 전념해왔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화실에는 50년대 작품이 한점 걸려 있는데, 물감을두텁게 칠하고 선만 남겨 놓은채 얼굴 형태를 흐트려 놓은게 무척 재미있었다.
"옛날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꽤 많아. 내가 생각해도 그때 작품이 훨씬 나은 것 같기도 하고…. 이젠 추상화를 그려보려 해도 마음이 따라주질 않아".함경도 함흥이 고향인 그는 개성 송도중과 일본대학 예술학부를 졸업하고 46년 영주농고에서 미술교사 생활을 시작,40여년간 교육계에 몸담았다.
만석꾼의 아들인데다 그의 호방한 기질 탓에 대봉동 집에는 항상 가난한 화가, 학생들이 먹고 쉬어가는 곳이었다. 요즘도그는 하루에 소주 1병 정도를 마시고, 제자들과 어울릴 때는 '풍류남아'의 기질을 가끔씩 드러내곤 한다.
호방한 기질을보여주는 그이지만 그림을 그릴때 만큼은 무척 꼼꼼하고 진지하다. 그는 후배나 제자들에게 "화가가 그림을 그릴 때는 천천히정성을 다해야지, 빨리 하려거나 남에게 보이기 위한 그림을 그려선 안된다"는 충고를 자주 한다.
그는 팔순을 기념해 20일부터 25일까지 대백프라자갤러리(053-420-8015)에서 개인전을 열고, 70여년간의 그림 인생을 되돌아본다. 물론 나무를 소재로 한 작품 30여점을 내놓는다. 1948년 포항군청 회의실에서 첫 개인전을 가진 이래 24번째 갖는 개인전이다. "그림을 그린다는게 예전에도 힘들었지만, 요즘에는 더 힘들어. 마지막 개인전이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박병선기자 l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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