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강남 간' 제비

"춘삼월 호시절을 당하니 강남서 제비 왔노라. …〈중략〉…제비 새끼 상한 다리를 곱게곱게 감아 매어 찬 이슬에 얹어 두었더니 하루 지내고 이틀 지내고 십여 일이 되더니 상한 다리 완구히 소생되어 강남으로 제비 가노라 하직한다".

'흥부전'에 나오는 구절이지만, 흥부가 '제비 박'을 통해 부자가 됐다는 설화소설은 유명하다. 최인훈의 '놀부뎐'은 졸부의 의식구조를 윤리관의 변질, 물질만능주의의 심화, 인간성 타락, 비리의 팽배 등 현대인의 한 원형을 놀부에서 찾고 있는 경우다.

0..해마다 3월 경 동남아에서 날아와 10월 경에 되돌아가는 제비는 '흥부전'에서 묘사되고 있듯이길조(吉鳥)였으며, 우리 정서에는 '봄의 전령'이자 '보은(報恩)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더구나 '제비가 낮게 날면 비가 온다'는 말이 있듯이 옛날에는 일기예보까지 했다. 제비는 이 같이 옛날 사람들의 생활에 간과할 수 없는 역할까지 했던 셈이다.

0..'강남 갔다 돌아온다'는 그 제비가 이젠 잘 돌아오지 않는 모양이다. 가장 먼저 찾아온다는 제주 서귀포에는 벌써 지난 1992년 이후 처음 발견되는 날이 그 이전의 3월 21일(30년 평균)보다 4.4일이나 늦어졌다지만, 지구 온난화로 갈수록 봄이 빨리 오는 현상을 감안하면 우리나라를 찾는 제비가 엄청나게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재작년 서울시는'보호야생조류'로 지정하기도 했으나, 제비는 이제 우리의 정서에서 멀어져 추억 속에 들어앉는 것일까.

0..제비가 안 돌아오는 이유는 환경오염이 주범인 듯하다. 가장 큰 원인은 논밭이 줄고 농약을 많이 써 먹이인 곤충들이 잘 살 수 없기 때문인 것으로 꼽힌다. 둥지를 틀기에 안성맞춤인 재래식 가옥이 사라져 가는 점도 그 이유로 꼽히기는 하나, 시골의 묵은 제비둥지들마저 오래 전부터 비어 있는 점은 무엇을 말하는 걸까.

실제 우리나라의 경지면적은 지난해 187만㏊로 20%나 줄어들었으며, 농약 사용량은 1980년 이후 무려 60% 정도 늘었다고 하지 않는가.

0..시인 이윤학은 '제비집'에서 "전깃줄에 떼지어 앉아 다수결을 정한 다음 날/…〈중략〉…제비떼가, 하늘 높이 까맣게 날아간다"고 묘사했다. 시인 박세영도 '산제비'에서 "녹두만한 눈알로 천하를 내려다보고/주먹만한 네 몸으로 화살같이 하늘을 꿰어"라고 노래하면서 농촌 현실에 대한 애정과 지식인의 공동체의식까지 일깨우고 있다.

제비가 돌아오지 않는요즘 환경오염뿐 아니라 최인훈의 '놀부뎐'이 꼬집고 있는 각종 사회 현상의 어둠들이 이 봄을 우울하게 만든다면 지나친 감상일까.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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