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현장파일 이곳-메마른 봄철 산불 감시활동

18일 오후 대구시 동구 봉무동 봉무레포츠 공원. 포근한 봄날씨로 공원내엔 개나리가 만발하고 벚나무도 꽃망울을 터뜨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포근한 기온과 달리 매서운 봄바람은 한겨울의 강풍을 아우로 삼을만큼 세찼다. 게다가 이 바람을 타고 황사까지 몰아쳐 눈을 뜨기조차 힘들 지경이었다.

산불감시초소 순찰에 나선 불로봉무동 사무장 김성필(41)씨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다. 바싹 메마른 날씨인데다 몸이 휘청거릴 정도로 세차게 바람이 불고 있기 때문이다.

단산지 못둑에 올라선 그는 못둑 끝에 자리잡은 초소에 들렀다. 초소를 지키고 있던 공익요원 최병효(23)씨가 초소주변 상황을 보고한다. 황사바람이 거세게 부는데다 평일인데도 이날 삼삼오오 단산지를 찾는 주민이 적잖았다. 공익요원 최씨는 "주말이면 단산지 주변 등산로를 찾는 가족단위 등산객이 많아 신경이 쓰인다"고 말했다.

불로봉무동 관할 산불감시초소는 위남.강동.원불교.단산지 등 4곳. 공익요원 8명과 산불감시 공공근로자 5명을 합쳐 13명이 감시하는 면적만 500㏊(약 150만평)에 달한다. 사무장 김씨는 "동구지역 20개동 중 산불감시에 나서야 하는 행정동은 6개"라며 이들 동사무소 직원들의 처우개선을 바랐다. 휴일도 반납하고 근무하는 직원들의 하루 일당이 5천원으로 한 끼 밥값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김씨는 "산불 대부분이 등산객들의 담뱃불과 농민들의 논.밭두렁 태우기 등 실화로 발생한다"며 주의를 촉구했다. 특히 논.밭두렁 태우기는 바람이 심한 오후보다 오전에 해달라고 당부했다. 올들어 전국에서 발생한 산불은 19일 현재 모두 279건으로 등산객 실화와 논.밭두렁 소각으로 인한 산불이 전체의 절반을 넘는 157건이었다.

대구 동구청 청사 4층 도시과내 산불대책본부에 설치된 산불무인감시 시스템은 동구지역 뿐 아니라 대구 북구와 수성구, 경산시 지역의 산불까지 감지하는 첨단 시스템이다. 실제 며칠전 동구 능성동 예비군 훈련교장 너머 경산지역의 산불을 조기 발견, 헬기를 출동시켜 초동진화에 성공했다.

이 시스템을 구축한 동구청 도시과 녹지계의 신홍근 주임은 "산불은 이제 진화가 아니라 예방개념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그는 동구지역의 과거 산불을 월별.계절별.원인별로 분석했다. 분석 결과 산불은 예방이 최우선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이에 일부 산불감시초소를 옮기고 내동.문암산.상매 등 3곳에 고층 감시탑을 설치하는 등 감시체계를 개선했다.

특히 올해초부터 본격 가동된 환성산.안심 숙천.동구청 등의 무인감시 카메라는 그 위력이 대단하다. 파계사 아래쪽 공산지역 등을 제외한 동구 전지역을 커버하고 동구외 북구.수성구.경산시 지역 산불까지 모니터한다. 산불이 발생한 지점 역시 지리정보시스템을 통해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게다가 이 카메라는 20배 줌기능까지 갖춰 동구청 사무실에서 수성구 월드컵 경기장 주변을 상세히 관찰할 수 있을 정도다.

신 주임은 "초소와 감시탑, 무인감시 카메라 3원 감시체제를 구축한 뒤 직원들의 산불진화 출동이 크게 줄었다"면서 "내년에 산림청에 예산지원을 요청, 파계사 주변 및 공산지역 등 취약지역 2곳에 무인 감시카메라를 추가설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심해택 녹지계장도 "원격조정이 가능한 무인 감시카메라를 설치한 뒤 연기만 나도 헬기 출동이 가능해졌다"며 "경고방송도 가능해 주민들도 과거보다 조심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대구 동구청 임차 헬기 조종사 오태원(55) 기장은 지난 87년부터 15년동안 전국의 산불현장을 누볐다. 전국 시.군 중 그가 안가본 곳은 없다. 헬리코리아 소속인 그는 지난 99년부터 동구지역 산불진화의 첨병 역할을 맡고 있다.

18일 오후 동구 봉무동 봉무레포츠 공원내 단산지 위쪽 헬리포트 옆 컨테이너 사무실에서 오 기장을 만났다. 헬기조종 경력만 30년인 그는 산불 진화뿐 아니라 말솜씨도 베테랑이었다.

"오늘처럼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은 긴장됩니다. 산불이 나면 대형 산불로 번지기 십상이지요. 큰 산불이 발생해 화기가 치솟으면 대형이건 소형이건 헬기도 소용없어요. 산불은 특히 초동진화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우리나라는 산악형 산림인 탓에 산불이 발생하면 헬기외에 바로 접근할 방법이 거의 없다. 게다가 대형 산불이 발생하면 불기둥이 보통 20~30m 높이까지 치솟는다. 이 때 중심부 화염의 온도는 1200℃이며 주변 연기 온도도 600℃나 된다. 더욱이 바람이 심하게 불거나 밤이 되면 헬기마저 뜰 수 없어 속수무책이 된다. 따라서 초동진화 시스템 구축이 필수적이다.

오 기장은 "고층 감시탑과 무인감시 카메라를 설치한 대구 동구청의 초동진화 시스템은 전국에서도 손꼽힌다"며 '고객'을 치켜세운 뒤 "올 봄에만 큰 불로 번질 산불을 초동진화로 끈 게 5, 6건은 된다"고 밝혔다.

서울에 가족을 두고 있는 그는 헬기 정비사, 급유차 운전기사와 함께 3인 1조로 1년중 6개월을 대구의 여관에서 생활한다. 그의 하루 일과는 해가 뜨면 시작되고 해가 지는 시각에 끝난다. 건조주의보와 산불경계경보가 발령되면 산불 출동외 산불예방 계도 방송에도 하루 한차례 나선다.

조영창기자 cyc1@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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