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종이와 동.서 문명의 만남

일본의 저명한 역사소설가인 진순신의 '페이퍼 로드'(조형균 옮김, 예담 펴냄)는 종이를 통해 바라본 동서문명 교류사로 분명히 비단길인 '실크 로드'에 빗대 붙여진 것이지만 '실크 로드'만큼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전한시대 이미존재채륜이 제조법 집대성

지은이는 '전한(前漢) 시대때 종이가 발명됐다'는 다소 충격적인 문장으로 이 책을 시작하고 있다. 무심코 들으면 별 내용은 아니지만 종이의 발명가로 널리 알려진 채륜이 후한(後漢)시대 인물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생소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

이 사실을 증명해보이기 위해 사마천의 사기와 시경 등 고서를 인용해 어떤 형태로든지 종이(紙)가 채륜 이전에도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다만 당시 여러 종류의 원시 종이들을 집대성해 현재 우리가 종이라고 부를 수 있는 형태를 채륜이 발명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당시 중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도 종이와 비슷한 물건들이 사용되고 있었다. 한나라가 건국될 무렵 존재했던 아나톨리아(현재 터키 지역) 페르가몬 왕조의 에우메네스 2세는 20만권의 장서를 가진 대도서관을 세우면서 파피루스 책을 만들다가 양피지를 개발했고 인도에서도 종려나무와 비슷한 '타라'라는 나뭇잎이 사용되기도 했다.

8세기경 청나라때실크로드 통해 전해져

서두를 종이에 대한 여러가지 기원에서 시작한 지은이는 채륜의 종이가 어떻게 서구에 전해지고, 그것이 어떤 영향을 미쳤느냐에 관심을 두고 있다.

'실크 로드'는 이미 한나라때부터 지역 대상들을 통해 비단 등 생활용품과 사상, 문화, 인적교류의 장이 됐고 종이도 이때 교역물품이 됐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지만 실제 종이제조법이 서구에 전해진 것은 8세기 무렵인 당나라 때로 보는 것이 정설이다.

751년 당나라는 고구려 출신인 고선지를 앞세워 중앙아시아 여러나라와의 전쟁(탈라스 전쟁)을 벌이기 되는데 당이 크게 패하면서 수만의 군사가 포로가 되고, 그 포로중 종이 제조공이 있어 전해졌다는 추론이다.

유럽 인쇄술 발명계기'르네상스'결정적 역할

사실 이 전쟁은 전 역사를 통해 보면 사소한 것이었지만 종이제조법이 서구로 전파됐다는 관점에서 보면 획기적이라 할 만하다. 물론 이 제조법은 이슬람이 이베리아 반도(현재 스페인과 포르투갈 지역) 남부를 지배하면서 자신들의 문명을 떨친 12세기 초나 되서야 유럽에 전파됐지만 지은이는 이 종이 제조가 곧 바로 유럽의 인쇄술 발명, 르네상스 시대의 도래로 이어지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결론짓고 있다.

긴 여정이지만 지은이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인물인 고선지와 담징, 현장법사, 아부 무슬림 등 개개 인물과 돌궐.거란.이슬람 민족들에 의해 중국에서 유럽에 이르는 종이의 길을 밝히고 있다.

정지화기자 jjhw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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