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지리산 산수유마을

봄의 매력은 무엇보다 꽃에 있다. 동백꽃, 매화, 산수유, 개나리, 진달래, 벚꽃, 복사꽃, 배꽃 등이 시간차를 두고 피어나 저마다 색깔을 뽐낸다. 이런저런 이유로 동백꽃이나 매화의 꽃재롱을 놓쳤다면 이번 주말에는 산수유마을로 소문난 구례 산동으로 길머리를 잡아보자. 그곳엔 그냥 지나쳐버리기 아까운 봄꽃의 절정이 있다.

대구에서 하루 길로 충분하지만 간 김에 섬진강변의 곳곳을 둘러보려면 아침 일찍 출발하는 것이 좋다. 일단 88고속도로를 타고 남원으로 향한다. 남원에서 구례~하동으로 이어지는 19번 국도로 갈아타고 밤재터널을 지나면 지리산온천. 산수유꽃의 황홀경이 온천 입구부터 가슴을 뛰게 한다.

온천으로 이어지는 오른쪽 산비탈부터 산자락까지 온통 노란빛이다. 작은 꽃송이들이 모여 완연한 봄빛을 낸다. 멀리서 보면 골짜기마다 노란 안개가 자욱하다. 이곳에선 '봄의 색깔은 노랑'이라고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다.

화가.사진작가 발길 줄이어

그러나 산수유꽃 구경의 명당은 따로 있다. 애써 콩닥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온천지구를 지나면 네거리가 나온다. 상위.월계방면으로 좌회전해서 500m쯤 가다 반곡마을 버스정류장을 끼고 좌측으로 방향을 잡는다. 승용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만한 좁은 길을 따라 내리막을 내려서는 순간 노란빛이 온몸을 휘감는다. 정신을 차릴 틈조차 없다. 산수유가 지천이다.

여기서부터 가장 윗쪽 마을인 상위마을까지는 걸어서 20분 정도. 그 시간이면 온 몸이 새 봄빛으로 물든다.

마을 중간을 가로지르는 계곡이 노란빛으로 일렁거린다. 아예 계곡전체에 노란 물감을 풀어놓았다. 파란 하늘과 검은 바윗덩이를 배경으로 아지랑이 같은 노란빛을 내뿜는 산수유꽃은 보는 사람을 황홀경에 젖게 한다. 그 속의 흰색 매화 한 그루가 더 단아해 보인다. 그래서일까. 이곳은 화가와 사진작가들이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스케치하기에 이만한 명소도 드물죠. 매년 이맘때면 전국에서 화가들이 몰려듭니다" 계곡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에 자리잡은 하곡 김현승(41.전남 순천시 중앙동)화백도 이곳 풍경을 화폭에 담기에 바빴다. "산수유는 꽃만 아름다운 것이 아닙니다. 그 아름다움 속에 역사의 아픔을 안고 있죠". 산수유는 가을이면 빨갛게 익어 또 한번 산을 물들인다.

가을이면 또 붉은 물결 '출렁'

이 마을은 여순사건 때 많은 젊은이가 희생돼 제삿날이 같은 집이 여럿이다. 한때 100여호가 넘던 큰 마을이었으나 여순사건과 한국전쟁을 거치며 지금은 20여호만 남았다고 주민들이 전해준다.

그나마 몇몇 마을을 지키는 60대 이상의 어른들은 이빨이 성한 사람이 하나도 없다. 대추보다 훨씬 작은 산수유 열매를 팔기 위해 씨앗 하나하나를 이빨로 물어 빼냈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이 마을의 산수유 꽃은 이런 역사를 아는지 모르는지 올 봄에도 이끼 낀 돌담 너머로 흐드러지게 피어 상춘객을 맞는다 . 골짜기 가득한 노란빛은 어두웠던 과거마저도 환하게 만드는 마력을 가졌는가.

이때쯤 노란 세상의 산동마을 골짜기를 돌아보고 오면 겨울내내 쌓였던 우울함도 훌훌 털어내고 돌아올 수 있다. 몽글몽글 꽃망울들이 달린 산수유꽃의 절정은 오는 주말이다. 구례군은 22일부터 24일까지 지리산온천랜드 일대에서 제4회 산수유 축제를 연다.

박운석기자 stoneax@imaeil.com

'하동포구 팔십리'도 일품

▒돌아오는 길

산동마을에서 대구로 돌아오는 가장 운치있는 길은 섬진강을 따라 하동까지 내려와 남해고속도로~구마고속도로를 이용하는 것이다. 넉넉하게 산수유꽃의 황홀경에 빠졌다가 남는 시간에 따라 다양한 보너스여행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지리산온천지구에서 나와 고속국도에서 좌회전해 구례까지 온 다음 하동으로 이어지는 19번 국도를 이용한다. 섬진강을 오른쪽으로 끼고 가는 이 도로는 잘 알려진 드라이브 코스.

구례~하동간 '하동 포구 팔십리'는'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해질 무렵 봄빛 가득한 강위로 보는 석양은 일품이다. 화엄사, 운조루, 화개장터, 고소성, 최참판댁 등 중간중간 관광지와 역사의 현장이 있어 테마 학습 관광지로도 손색이 없다.

돌아오는 길에 섬진강의 대표음식 재첩국으로 배를 채우는 것도 즐겁다. 섬진강변을 따라 식당이 늘어서 있으며 한 그릇에 6천원.

좀더 봄꽃을 즐기고 싶다면 승주 선암사를 들러보길 권한다. 이맘때 선암사를 찾는 이유는 매화와 산수유를 함께 볼 수 있기 때문. 노란 산수유, 산지여서 늦게 핀 흰 매화, 제철 만난 홍매화가 어우러진 환상을 볼 수 있다.

구례에서 순천으로 이어지는 고속국도를 타고가다 순천 가기전 학구 삼거리에서 우회전해 승주 방면으로 가면 표지판을 볼 수 있다. 시간여유가 조금은 필요하기 때문에 이곳은 부지런해야 즐길 수 있는 코스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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