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삶-60대 화가 김일웅씨의 인생유전

60대 중반을 훌쩍 넘긴 김일웅씨는 한번도 개인전을 가져보지 못한 화가다. 그 흔한 전시회 한번 열어보지 못한 화가의 삶에는 그럴만한 사연이 녹아 있다.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지난 삶은 소설처럼 극적이다.

가슴 속에 뿌리깊게 박혀 있는 삶에 대한 증오와 상실감. 그럴수록 더욱 강해져만 간 그림에 대한 집착. 마치 고행같은 그의 인생유전(人生流轉)에서 삶의 무게를 어렴풋하게나마 감지해낼 수 있다.

그는 피붙이 하나없이 평생을 낯선 객지를 떠돌아 다닌 사람이다. 만행에 나선 수도승처럼. 피곤한 육신을 누일만한 지상의 방 한칸조차 변변하게 가져보지 못했다. 김천에서 성장한 김씨는 김천고 재학시절 그림에 눈을 떴다.

1956년 서울대 미대에 합격했지만 입학금을 낼만한 처지가 아니었다. 도와줄 사람도 주위에는 없었다. 이발사였던 아버지와 기생이었던 어머니. 그래서 현실은 그에게 고단함이었다.

입대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림은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배움에 목말랐던 그는 서라벌 예술대(중앙대 전신)에 다시 진학했다. 겨우 입학금은 마련했지만 4년동안 수업료 한번 내지 못해 결국 졸업장을 받지 못했다.

그림을 그리고 싶어도 재료를 살 만한 돈이 없었다. 캔버스는 엄두도 내지 못했다. 갱지나 천조각이 그림에 대한 그의 열정을 받아준 유일한 재료였다.

그마저 서울 변두리 셋방을 전전하며 어렵게 삶을 꾸려갔다. 틈틈이 그린 그림들을 둘 데 없어 천막을 치고 마당에 보관하다 빗물에 다 망쳐버렸다. 빗물에 구겨진 그림처럼 그의 인생도 구겨져만 갔다.

1973년 열여덟살 연하의 아내와 만나 잠시 행복감에 젖어보기도 했지만 그마저 빗겨가고 말았다. 유종(乳腫)을 앓은 아내에게 그는 아무 것도 해주지 못했다. 그리고 이별. 그는 유랑을 시작했다.

그는 젊은 시절 삶과 세상에 대한 복수심 때문에 자신을 그렇게 몰아갔다고 했다. 가난과 질병, 상실, 고독감. 그러나 그림은 그런 현실의 중압감을 떨쳐버릴 수 있는 유일한 벗이었다. 서해안 시화호와 남양반도-토말-제주도 등 전국을 떠돌아 다니며 삶의 고통을 뼈저리게 체험했다. 그에게 40여년이라는 세월은 유전(流轉)의 시간이었다.

1년에 두 번꼴로 이사한 김씨는 지난 1999년 난생 처음 정을 낼만한 거처를 마련했다. 영천시 청통면 호당리 호당미술관. 폐교된 호당초등학교를 개조해 만든 곳이다. 쓰라리기만했던 그의 인생에서 이제 다른 맛을 조금이나마 누리게 된 것이다.

대학동기생인 화가 정대수(대구대 교수)씨와의 깊은 인연으로 호당미술관에 정착하면서 이제 별로 부러울게 없다. 간혹 어딘가 살아 있을 아내에 대한 아련한 추억이 가슴을 아프게 할 뿐. 그는 요즘 미술관 부관장직을 맡으며 그토록 해보고 싶었던 그림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유랑생활을 해온 탓에 그에게는 완성된 그림이 많지 않다. 대부분 그때마다 에스키스(밑그림)로 정리해 모아둔 것이 전부다. 20~30년전 그의 삶을 지탱해준 그림들.

이제는 누렇게 빛이 바랜 갱지의 그림들을 꺼내 한 점씩 화폭에 옮기고 있다. 이제사 30년 세월의 간극을 메워가고 있다. 그토록 갖고 싶었던 개인전도 준비중이다. 올 가을 대구 예술마당 솔에서 초대전 일정이 잡혔다.

그의 그림은 초현실적이다. 30년전 그렇게 헤어진 아내가 성게 껍질 속에 누워 있기도 하고, 어머니를 염할 때 보았던 앙상한 뼈가 모여 용두암이 되기도 한다.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꿈들을 화폭에서나마 이뤄보려는 심리를 반영하고 있다.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회환과 꿈, 다양한 삶의 얼룩들이 알레고리로 되살아난다.

어린이와 같은 순수함을 지녔기에 그의 자화상은 처절하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하다. 김일웅씨는 수십년을 철저히 혼자 살아온 외곬이다. 요즘도 그 인이 박혀 현실이 낯설기만하다.

오랜 세월을 방랑한 그에게 마음의 안식처가 쉽지만은 않을 터다. 그러나 그는 이제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그래서 그릴 수 있을 때까지 그리고 싶다고 했다. 대구에서 큰 규모의 전시회를 한번 해봤으면하는 것도 그의 욕심이다. 그의 지난 삶이 투영된 그림을 통해 요즘 젊은 작가들에게 뭔가 남겨주고 싶은 마음에서다.

2002년 3월, 황사가 심한 날. 연통을 단 무쇠 난로가 놓인 작업실에서 묻어둔 그림들을 다시 꺼내 화폭에 옮기고 있는 김일웅씨는 새롭게 화가로서의 인생을 시작하고 있다.

서종철기자 kyo425@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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