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에 영국은 본토 수백배의 해외 영토에다 세계 인구의 4분의 1이 그 깃발 아래 있는 거대 제국이었다. 그야말로 '해가 지지 않는 나라'였다.
이 때문에 대영제국의 낙조(落照)는 로마제국의 멸망과 함께 가장 흥미로운 역사 연구의 주제가 아닐 수 없다.
그 수수께끼에 대한 풀이는 다를 수 있겠지만, 미국의 석학 피터 드러커는 한 마디로 '기술자 천시(賤視)' 때문이었다고 보고 있다. 기술자를 절대로 '신사' 반열에 올리지 않는 사회 기풍이 영국의 경쟁력을 갉아먹는 독소였다는 해몽(解夢)이다.
▲최근 우리나라의 현실을 보면 영국의 쇠퇴는 '강 건너 불'이기만 할까. 얼마 전 서울대 이공계 합격자 등록 미달이라는 미증유의 사태까지 벌어졌지만, 이공계의 위기론은 우리 사회의 뜨거운 화두가 아닐 수 없다.
심지어 청소년 직업 선호에서도 과학기술인은 후순위로 밀려나고, 소위 '사'자 직업만 선호하는 추세다. 지식기반 사회라고 떠들어 대지만 정말 큰 걱정이다.
▲서울대·고려대·연세대의 기계공학과와 물리학과 4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한 조사에서도 40%가 고시 준비 경험이 있고, 이공계 선택을 후회하며, 재입학을 한다면 의대(24%)나 법학·경영학과(12%)를 선호하는 경향으로 나타났다.
이들의 가장 큰 걱정은 전망이 어둡고(60%) 처우가 낮기 때문(39%)이며, 엔지니어 천시 풍조(35%)도 큰 문제다. 고시 준비 이유도 직업의 안정성(32%), 이공계의 전망 결여(30%), 사회적 명예와 출세(23%) 때문이라 한다.
▲사회에 진출한 이공계 출신들도 '40대에 기술자로 남으면 도태되거나 해고된다'는 위기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는 모양이다. 살아 남으려면 관리자가 돼야 하는데 연구만 하다 보면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것도 이들의 비애다.
더구나 연구원의 '별'이라 할 수 있는 연구소장마저 '떨어진 별'이라고 느끼는가 하면, 성공한 경우가 교수밖에 없고, 희망 없는 이공계에 자식을 절대 안 보내겠다니, 이공계 위기의 본질은 희망이 없다는 소리가 아닌가.
▲국가 경쟁력은 그 나라의 과학기술에 달려 있다고 한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천연자원도 관광자원도 빈약하다. 이런 추세로 가다보면 국가 경쟁력이 점점 더 떨어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우수한 과학기술 인력 양성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질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기술자 천시' 풍조의 지양은 물론 과학기술 전공자에 대한 취업의 보장과 대우를 높이는 길을 찾아야 한다.
이공계 전공에 들어가는 노력이나 투자만큼 사회적 보상 체계를 만들어 주는 것도 최선의 방법은 아닐는지….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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