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지명관칼럼-제왕적 체제는 사라지는가

제왕적 대통령을 배격한다는 거센 국민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지금 행해지고 있는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도말하자면 이러한 제왕적 지배체제에 대한 국민적인 부정을 의식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민주당 특히 그 당 지도부가 스스로 선택했다기 보다는 국민의 여론이나 민심에 밀려서 그럴 수밖에 없게 되었다고 해야한다.

제왕이란 영토와 백성을 자기 소유로 간주한다. 그의 말이 곧 법이고 관료는 신하이며 국가재정은 그의 말에 의해서 집행된다. 그리고 그의 후계자는 미리 황태자로 정해둔다. 그리하여 그의 체제는 그가 사라져도 계속하는 것이다. 이리하여 자신과 가족은 부귀와 영화의 극치를 누린다.

우리나라가 지금까지 민주주의를 실천한다고 하면서도 이러한 왕조적인 성격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 제왕적 체제라고 부르는 사람들의 견해라고 하겠다. 거기에 상당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누구나 수긍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대통령이 가진 권위, 그가 행사하는 권력, 그 주위에 모여들어 부와 영화를 나누어 누리겠다는 인간군상들.

그래서 이처럼 신하처럼 모여든 측근을 물리쳐야 하며 밀실정치를 폐지해야 한다고 해왔지 않는가. 대통령 주위의 친인척의 특권과 비리 그리고 퍼준다든가 공적자금의 낭비라든가 하는 말이 그치지 않았고 거기에 따른 무슨 게이트, 무슨 게이트 하는 비리가 이어졌다. 그래서 역대 정부가 어쩌면 모두 닮은꼴이냐고 국민은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가 선거 때 특히 대통령 선거 때만 되면 천문학적인 자금을 거두어 들이고 자기가 원하는 사람을 후계자로 내세우려고 갖은 노력을 다했으니 어떻게 제왕적인 대통령이라는 비난을 면할 수 있었겠는가.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개명한 시대에 아직도 어느 지역과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을 마치 지난날의 제왕들처럼 자기 마음대로 지배하고 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러기 위해서 갖은 노력을 경주했다는 것이다.

3김(金)시대란 무엇이었던가. 마치 후삼국때 제왕들이나 된 것처럼 어느 지역을 자기소유처럼 생각하고 행세하려고 했던 것이 아닌가. 그런데 아무래도 이러한 제왕적 시대가 지금 서서히 물러나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 후유증이 도처에 아직 복병처럼 도사리고 있다고 하여도 역사적 추세로서는 그것은 사라지고 있다고 본다는 말이다.

오늘의 정치세력이 감히 자기들의 후계자를 만들어내려고 천문학적인 정치자금을 동원해 낼 수 있을 것인가.그러한 것을 허용하리만치 우리 국민이 지난날의 황제에 굴종하던 신민의 굴레를 아직 벗어나고 있지 못했다는 말인가.생각해보면 반세기가 넘는 한국 현대정치는 언제나 카리스마를 지닌 인물에 기대를 걸었다가는 좌절을 맛보곤 한 역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시행착오를 거쳐서 이제 우리 국민이 도달한 지혜는 '역사에기적은 없다''민주적인 절차를 통해서 국민의 뜻을 모으면서 서서히 사회적인 변화를 추구해 가야한다''역사적 변화를 일으키는 것은 제왕적인 인물이 아니라 우리 국민이다'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먼 훗날 2002년의 오늘을 역사가들은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 다시 찾아오기 어려운 월드컵 그리고 지방선거와 아시안게임에 민족적으로 성숙한 슬기를 발휘했다. 무엇보다도 대통령 선거에 있어서 지역감정도 극복했고 가장 민주적이고 부정 없는 선거를 치러냈다.

다이내믹한 한국국민은 또 다시 역사의 커다란 전기를 만들어냈다. 이렇게 기록될 것인가.한국 현대사는 남북분단의 아픔에도 불구하고 놀랄만한 몇 개의 결정적인 민족사적 이정표를 세웠다. 어쩐지 오늘을 뒤덮고 있는 어둠 속에서도 이번에 또 하나의 거대한 이정표, 민주주의를 향한 약진의 이정표를 우리 국민이 세우는 것이아닌가하는 꿈이 내게는 있다.

지명관 한림대 일본학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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