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최대의 적은 폭력이라 한다. 그 유형은 유형적인 물리적 폭력과 무형적인 정신적·언어적 폭력으로 나뉠 수 있다. 우리 사회에는 폭력이 또 다른 폭력을 낳는 악순환이 거듭돼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속성이 누적되고 가중돼 오기도 했다.
이를테면 손바닥으로 뺨을 갈기는 폭력은 주먹으로 얼굴을 되받아 치고, 급기야는 철퇴를 휘두르는 데까지 이르는 식이다. 이제 그 악순환은 정점에 이른 느낌마저 없지 않다. 대낮에 쇠파이프로 사람을 즉사시키는 폭력이 일어나는 형국이다.
▲물리적 폭력에 못지 않게 몸서리치게 하는 게 '언어 폭력'이다. 전화·PC 등의 익명성을 악용해 원색적인 욕설과 비방·음해를 하는 경우는 비일비재(非一非再)다. 맞대놓고 하는 욕설은 그나마 비겁하지라도 않지만, 익명성을 악용하는 언어 폭력은 '등뒤에서 칼을 꽂는 비열한 행위'나 다름 없다. 갈수록 험악해지고 비열해지는 우리의 언어생활은 이제 위험 수위를 넘고 있는 걸까.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2001년 사회 통계조사'에 따르면 공갈·협박·음란 전화 등 '전화 폭력'을 경험한 사람은 10명 중 3명(28.1%)이나 된다고 한다. 1997년 조사에서의 23.8%보다도 크게 늘어나 우리 사회의 병폐가 악화되고 있음을 말해 주기도 한다. 욕으로 시작해서 욕으로 끝나는 영화 '친구'의 기록적인 흥행 기록은 우리의 저급한 언어문화를 역설적으로 보여 준 경우였지만, 우리 사회가 욕설과 폭력으로 도배되는 현상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얼마 전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 한국교민 두 사람이 각기 다른 교민과 다투던 중 '죽여버리겠다' '너, 오늘 죽었어'라고 욕설을 퍼부었다가 경찰에 체포된 사건은 우리의 저속하고 극단적인 언어 문화를 드러낸 하나의 사례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정도 욕설 쯤은 지나칠 수 있는 정도가 아니던가. 더구나 보이지 않는 세력들이 비판적인 지식인들의 입을 틀어막으려는 등 '민주적 언로 농간'이 횡행하는 세태는 암담하기 그지없다.
▲사람들이 서로 저주를 퍼부어대는 사회가 잘 되기를 기대하는 건 '나무 위에 올라가 물고기를 기다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런 풍토에서 삶의 질이 높아지기를 기대할 수도 없다. 우리 모두가 평상심(平常心)을 찾으면서 증오와 저주가 담긴 표현을 조금만 순화해도 사회는 한결 윤택해지고, 삶의 질도 높아지게 되지 않을까. '입에서 나오는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는 성경의 가르침이나 '욕설도 내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상대에게 되돌아간다'는 석가의 설파를 새삼 되새겨 본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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