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그림이야기-화가와 가난(중)

빈센트 반 고흐가 자그마한 작품(小品)만 남긴 이유는? 큰 캔버스를 살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화가들의 배고픔은 엇비슷했다.

국내 최고 화가로 꼽히는 이중섭과 박수근도 내내 굶주리다 고달픈(?) 삶을 마쳤다. 그들이 아직까지 생존해 있다면 호당 2천만원이 넘는 자신의 작품 한점만 팔아도 몇년간 편히 놀고 먹을 수 있겠지만, 그 당시만 해도 작품을 사주는 이가 드물었고 가격도 헐값이나 마찬가지였다.

요즘에는 부와 명예를 쌓은 화가들이 꽤 많지만, 20년전만 해도 화가들이라면 누구나 가난과 지긋지긋하게 싸워야 했다.원로화가들의 회고담.

"50년대에는 캔버스 가격이 너무 비싸 서문시장에서 구입한 삼베에 그림을 그렸어. 세월이 지나면서 물감이 군데군데 떨어져 지금은 누더기(?) 그림으로 남아있지". "그림을 그리려 한다고 '밥 빌어먹을 놈'이라며 부친에게 몽둥이 세례를 받기도 했고, 어렵게 구한 화구도 여러 차례 부서졌어".

예술가들이 대접받는 프랑스에서도 50년대까지 배고프지 않는 화가들은 손꼽을 정도였다. 미술사에 이름을 올려놓은 유명작가들도 무명시절 호구지책으로 여러 직업을 전전한 것을 보면 '인생유전(人生流轉)'이란 말이 딱 들어맞지 않나 싶다.

'게오르그 루오(1871~1958)는 유리공 도제로 눈물젖은 빵을 먹었고, 로저 비시에르(1888~1964)는 밭을 일구는 농사꾼이었다. 모리스 블라맹크(1876~1958)는 모자를 벗어들고 바이올린을 연주했고 세르지 폴리아코프(1900~69)는 나이트클럽을 돌며 기타를 연주했다.

장 아틀랑(1913~60)은 손금을 보는 역술인(?)에다 행상까지 했고, 조각가 세자르(1921~)는 쓰레기통을 뒤져 나온 금속쪼가리로 작업했다' 〈손철주의 '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중에서〉.

지역에서 이름있는 한 중견작가는 젊을때 후배들과 함께 임화(臨畵:명화를 본뜬 그림)를 그리면서 밥값을 벌었고, 또다른 작가는 한때 재료비를 구하기위해 대량으로 복제하는 '이발소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40대 초반 현대미술가의 경험담. "10년전에는 화구를 살 돈이 없어도 작가 생활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어요. 오브제를 붙이는 개념미술이 유행하던 시절이라, 쓰레기장이나 골목길에서 나무, 쇠 따위를 주워 두드리고 붙여 작품을 내놓았죠. 요즘은 그 유행도 지나가 돈이 없으면 '때깔나는' 작업을 못합니다".

무명화가들의 고생담은 끝이 없다. 유망주로 꼽히는 30대 작가는 작업실이 없어 자취방에서 자그마한 작품만 만들고 있고, 또다른 작가는 전시회가 눈앞에 닥치면 선.후배의 작업실을 전전한다.

한 화가의 얘기. "상당수 작가들의 경우 수입이 거의 없는데도 먹고 사는걸 보면 신기합니다. 적게 먹고 많이 다니지 않고 재료값을 떼먹거나(?) 천천히 갚는 방식이 많죠". 가난도 화가에게는 낭만일수 있지 않을까. 물론 화가들에게 욕먹을 얘기지만….

박병선기자 l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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