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부모랑 자녀랑-인터넷 함께 보며 여행정보 챙겨요

"조선시대 때 한양 갔다 돌아오던 선비가 술에 취해 잠이 든 사이에 불이 났는데요. 따르던 개가 몸에 물을 적셔 주인을 살린 곳이 바로 의구총이래요".

대구서 살다 구미로 이사온지 한달밖에 안 된 창완(상모초 2년)이. 그래도 새로 살게 된 구미 지역에 대해선 이미 잘 알고 있다는 듯 유창하게 설명을 했다. 지난 일요일(24일) 가족끼리 지역 알아보기 소풍을 다녀온 덕분.

창완이네는 이제 가족여행이라면 나름의 노하우가 생겼다. 여행지 결정은 주로 인터넷을 이용한다. 교과서에 나오는 유적지나 명승지도 자주 찾는다. 갈 곳이 결정되면 먼저 시.군청 홈페이지에 접속한다. 기본적인 안내 자료는 물론 교통편, 숙박시설 등이 소개돼 있고 관련 링크도 잘 정리돼 있기 때문.

이번 나들이는 낯선 곳으로 이사온 자녀들의 생소함을 떨쳐주기 위해 어머니 김인순(35)씨가 제안한 것. 김씨는 아이들과 함께 구미시청 홈페이지에서 갈 만한 곳을 짚어본 뒤 게시판을 통해 자료를 보내주십사고 요청했다. 시청 담당자가 보내준 관광안내책자를 보는 것 만으로도 창완이와 누나 정이(상모초 4년)는 즐거워했다. 자료를 놓고 의논을 하자 가게 될 코스와 걸릴 시간까지 얼추 계산이 됐다. 이 정도면 준비 끝.

부모와 함께 나들이를 나선 아이들은 가는 곳마다 미리 알아둔 게 있다는 듯 호기심을 보이며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연신 질문을 해댔다. 매학정-석좌여래좌상-낙산리 고분군-의구총-일선리 문화재단지 등 여러 군데를 들렀지만 그때마다 생각나는 게 있다는 듯 손뼉을 치기도 했다.

김씨는 "임하댐 수몰지를 옮겨온 문화재단지에선 할머니와 인터뷰까지 했는데 창완이가 너무 재미있어했다"면서 "3시간 정도 만에 대충 둘러본 길이었지만 낯설어하던 애들에게 큰 도움이 된 것 같다"고 했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에도 즐거움은 계속됐다. 디지털 카메라로 찍어온 사진들을 전자앨범에 담는 일이다. 엄마가 포토샵으로 편집을 하면 애들은 색깔이나 밝기 등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간섭하고 어떻게 앨범에 꽂을지를 두고 토닥거리기도 했다. 사진설명 쓰는 일은 아이들 몫이다.

얼핏 들여다본 전자앨범에는 벌써 많은 사진들이 정리돼 있었다. 단순한 기념사진보다는 다녀온 곳을 두고두고 얘기할 수 있을 장면을 담은 것들이 많았다. 지난 여행과 이번 여행을 비교해보고 다음 여행에 대한 얘기를 나누는 것도 사진을 정리하면서 자연스레 이뤄졌다.

가족끼리 나누는 뒷얘기로 마감되는 창완이네의 가족여행은 잘 짜여진 체험학습이나 다름 없었다. 이처럼 준비하고 다녀오고 정리하는 여행 습관은 창완이 덕에 생겼다. 김씨는 "창완이가 어릴 때부터 자폐 기질이 있어 애를 먹었지만 여행을 계획해서 다닌 뒤로 상당히 좋아졌다"면서 "여행을 통해 기질이 변하고 있는데다 학교에서도 많이 도와줘 정상 학급에서 다닌다"고 했다.

여행으로 길눈이 밝아진 정이는 친구들을 만나러 혼자서 대구까지 몇번을 다녀왔다. 처음엔 구미역까지 데려다 줬지만 이젠 걱정말라며 아예 혼자 집을 나설 정도다. "조금만 더 크면 모르는 곳도 혼자 여행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얘기가 초등학교 4학년생 답지 않아 보였다.

김재경기자 kj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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