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가위질

예년보다 일찍 찾아온 봄은 환한 꽃망울을 터트리는데 갑자기 불어닥친 황사는 봄꽃의 싱그러움을 순식간에 삭막하게 바꿔버렸다. 초등학교 학생들은 휴교를 하고 어른들은 온통 얼굴을 가린 채 다니기도 했다. 병원들은 호흡기 환자들로 붐비고 눈이 아프다는 우리 아들녀석은 오늘도 안약을 찾았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다가 문득 닥치는 자연의 재해에 우리는 얼마나 황당해 했던가? 그러나 이런 황당한 일이 지금 영화계를 들끓게 하고 있다.

지난 3월1일 개봉한 영화 '알리'가 무려 28분이나 삭제된 채 상영되어 각종 인터넷 영화관련 홈페이지 게시판을 뜨겁게 달구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영화에 있어서 가위질은 필요하다고 생각해 왔다. 등급심의 과정에서 반윤리적.반사회적 장면은 삭제되어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 청소년들을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건 문제가 다른 것 같다. 원래 상영시간인 151분으로는 하루 5회 상영이 불가능해 다소 지루한 부분을 잘랐다는 것이다. 도대체 말이 되는 소린가? 네티즌들의 항의가 거세지자 영화사는 다시 원판복원 상영을 한다고 한다.

흥행을 추구하는 상업영화에서 현실적 상황에 맞게 가위질하는 것은 어쩌면 용납될 수 있는 관행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영화가 예술이건 상품이건 제작자의 의도를 어떻게 상영횟수에 맞춰 자른단 말인가, 이러한 시대 착오적 발상은 영화의 본래적 의미를 퇴색시키며 흥행을 위해서라면 어떤 장면을 어떻게 자극해도 그만이라는 배짱을 갖게 한다.

마치 황사가 지나가 버리면 그만인 것처럼…. 그러나 영화는 우리 사회의 삼류에서부터 일류까지의 다양한 삶을 그려내 사회를 성숙시켜 나간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다양성은 문화라는 개념으로 정립돼 비로소 사람다운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어 간다. 거기에 영화는 삶의 새로운 재미와 의미를 부여할 것이다.

육정학〈경북외국어테크노대 교수.영상제작〉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