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시론-'뷰티풀 마인드'와 0교시 수업

며칠 전 아카데미영화제에서 작품상과 감독상을 수상한 '뷰티풀 마인드'는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천재 내쉬(John.F. Nash)라는 실존 인물을 모델로 한 영화이다. 내쉬에게 노벨상을 안겨준 게임이론은 실생활에서 적용 범위가 아주 넓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0교시 수업은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지금 어느 학교장이 0교시 수업을 하느냐 마느냐를 결정한다고 하자. 이 결정에서 중요한 것은 다른 학교의 행동이다. 만일 다른 학교에서 0교시 수업을 한다면 우리 학교도 뒤질세라 0교시 수업을 해야 한다. 다른 학교가 0교시 수업을 하지 않는다면 어떨까?

그 때도 우리 학교는 0교시 수업을 하는 게 유리하다. 왜냐하면 다른 학교보다 한 시간이라도 공부를 더 시키는 게 경쟁에서 유리하다고 착각하기 쉬우니까. 그리하여 다른 학교가 0교시 수업을 하든 안 하든 우리 학교는 0교시 수업을 하는 쪽으로 결론이 난다.

똑 같은 논리로 각 시·도 교육청에서는 다른 시·도와의 경쟁에서 지지 않으려고 0교시 수업을 부추기게 되고, 결국 전국적으로 0교시 수업이란 진풍경이 벌어진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학생, 학부모, 교사, 교장, 교육청 어느 누구도 전보다 행복해지지 않는다는 데 문제가 있다. 이 이론의 핵심은 각자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결정을 내리지만 결과는 모든 사람의 불행으로 끝난다는 역설에 있다.

이것은 다른 학교, 다른 지역에 뒤지지 않으려는 몸부림이자 집단 불안증이다. 비유하자면 무대 위의 배우를 좀 더 잘 보기 위해 처음에 한 두명이 일어서기 시작하면 그 뒤에 있던 사람들까지 다 일어서서 결국은 어느 누구도 전보다 잘 볼 수 없고, 모두들 다리만 아픈, 그런 형국이다.

이 문제의 해결책은 정부가 나서는 수밖에 없다. 요즘은 시장원리가 유행이라서 웬만한 것은 "시장에 맡겨라"고 한다. 그러나 시장은 만능이 아니며, 도처에 시장의 실패가 나타난다. 시장의 실패가 있을 때 교정하는 것은 정부의 임무다. 위에서 강조했듯이 0교시 수업문제는 학교장, 교육감의 재량에 맡겨서는 해결이 될 수 없으므로 전국적으로 통일된 중앙정부의 조처가 있어야 한다.

여론조사를 보면 0교시 수업을 찬성하는 부모는 별로 없다. 아마 학생, 교사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얼마 전 이 문제를 처음 제기한 TV 프로그램에 나온 프랑스의 고등학교는 등교 시간이 오전 10시였다. 일본도 우리와 비슷한 입시지옥에 시달리고 있는 나라지만 등교 시간은 9시다.

그런데 우리는 고3의 경우 대개 오전 7시 이전이다. 원래 9시가 1교시이니 실은 0교시가 아니라 -1교시가 맞는 말이다. 밤 늦도록 야간자습과 학원에서 시달린 학생들이 7시까지 등교하자니 수면 부족은 심각한 수준이며, 학교는 거대한 침실이 되고 있다.

산업혁명 때 영국의 아동들은 새벽 일찍 공장에 가서 하루 종일 노동에 종사하고 밤 10시가 넘어서야 귀가할 수 있었다. 새벽에 지각을 할까봐 어머니들은 밤을 새우기가 일쑤였고, 아이들은 너무 피곤해서 음식을 입에 문 채 잠에 쓰러지는 일도 많았다.

영국을 한국으로, 공장을 학교로, 노동을 공부로 바꾸면 위의 문장은 그대로 성립한다. 200년 전 영국 아동들은 생존을 위해 가혹한 노동이 불가피했다고 치자. 지금 한국의 학생들은 무엇 때문에 이런 비인간적 고통을 겪고 있는가? 과연 역대 교육부 장관들은 0교시 수업의 비합리성, 비인간성을 몰랐는지 궁금하다.

만일 모르고 방치했다면 직무유기에 해당하고, 알고도 방치했다면 청소년 학대에 해당한다. 이 문제는 교육감, 학교장의 재량에 맡겨서는 안 되며, 장관이 나서야 한다. 그런데도 교육인적자원부는 최근 공교육 내실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0교시 수업문제를 외면해버렸다.

그저께 서울시 교육청의 0교시 수업 금지조처는 전적으로 타당하다. 하루 빨리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은 전국 학교에 0교시 수업을 금지해야 한다.

(이정우·경북대 교수, 경제통상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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