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의 발자취를 더듬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사적 사실을 뒷받침해 주는 기록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집트의 '파피루스' '로제타 석' 등이 그 대표적인 예.조선의 역사와 생활상을 연구하는데 도움이 되는 중요한 사료중에는 조선왕조실록이 있다. 조선조에는 이 실록을 사고(史庫)를 지어 보관했는데 성주에도 사고가 있었다.
성주사고는 서울 춘추관, 충주에 이어 세종 21년(1439)에 전주와 함께 설치됐으며 여기에 역대 실록을 보관하기에 이른다.그러나 임진왜란 때 전주 사고를 제외한 나머지 사고가 소실되자 대도시 인근에 위치했던 사고를 전란의 피해를 적게 입는강화도.묘향산.태백산.오대산 등으로 옮기게 됨에 따라 복구되지 못했다.
같은 시기에 건축된 전주 사고에 견줘볼때 성주 사고는 2층 건물인데 아래층은 넓게 틔었고 2층은 높이 솟아 사다리를 통해 올라갈 수 있었다. 사다리는 돌 위에 놓여져 있었으며 건물 주위에 담을 쌓아 담밖에는 화재예방을 위해 풀.나무 등을 자라지못하도록 하고 병졸들이 지키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성주사고는 객사 동북쪽에 있었으며 사고 관리의 편의를 위해 관아와 인접해 설치했다는 것. 또 재해의 위험에 대비해 명산으로 옮기자는 주장도 있었는데 실제로 중종때 화재피해를 입었고 임진왜란 때는성주읍성이 함락되면서 소실됐다고 한다.
사고가 있었던 곳은 지금도 마을이름이 사곡(史谷)이라고 불리고 있으며 마을 한가운데는 수령을 알 수 없는 고목과 사용한지 오래된 옛 우물이 자리해 있으나 세월이 흘러 사고의 정확한 위치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다만 인근에서 주춧돌로 사용된 큰 돌들이 나왔다는 지역민들의 말들에 비춰 추측만 할 뿐이다.
성주.박용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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