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말에세이-옛 대구상고 부지를 시민공원으로

예부터 우리는 집 채 세우면서도 자연의 풍광(風光)을 배려하고 이웃과의 어울림을 고려하였다. 한 인간의 삶이야 100년이면 끝이 나고 또 새 사람이 태어난다지만 한번파괴된 자연은 돌이킬 수 없으며, 이웃을 고려하지 않는 건축은 결국 나 자신에게 독(毒)이 되어 해를 끼치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장과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마구잡이로 지어진 아파트들은 오히려 우리의 주거 수준을 후퇴시키고 환경마저 파괴하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였다. 공존(共存)의 원칙은 무시된 채 팔아서 돈 되느냐에만 집착하게 된 결과이다.

◈아름다운 마을

외국을 여행하다보면 바로 이곳이 천국이구나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마을들을 보게되는데 그런 곳에는 어김없는 공통점이 있다. 남의 집 웃자란 잔디에 벌금을 매기기도 하고 길가 쪽 베란다에는 항상 화분을 내어놓는 등 환경을 위한 크고 작은 합의와 규칙들을 주민 스스로가 만들어 간다는 것이다.

반갑게도 최근 대구시도 도심의 빌딩 숲 사이로 공원과 녹지를 조성하는 등 친환경적인 도시로 탈바꿈하려는 일련의 노력들을 펼치고 있다. 이는 단순히 내 고장을 보기 좋고 아름답게 꾸미자는 정서적인 차원을 넘어 인간과 자연의 상생(相生)이야말로 인류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보장하는 토대이자 목표라는 세계사적인 흐름에 동의해 가는 과정으로 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흐름에 정면으로 반(反)하여 옛 대구상고 부지(중구 대봉동)에 최고 37층의 초고층 아파트단지가 들어설 예정이라는 보도를 접하고 대구시민의 한사람으로서 경악과 함께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다. 주거지역으로 적합하지도 않은 이 지역에 초고층 아파트라는 것도 문제지만 이 땅이 지닌 효용과 가치를 제대로 살려내지 못하는 우리의 현실이 더욱 가슴 아픈 일이다.

도심 한가운데 초고층 아파트단지를 조성한다는 것은 도대체 누구의 발상인지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그곳에 살게 될 수천여명의 입주자들과 대구시민이 들이킬 매연과 먼지, 빼곡히 들어설 콘크리트 빌딩들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숨이 막힌다. 분명 이 발상은 이 도시의 죽음이 자신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는 이방인(異邦人)의 어리석은 결정임이 틀림없다.

◈대구를 대표

바라건대 그곳은 인근 사범대학부속고등학교 자리와 함께 도심공원으로 조성되어야 할 것이다. 대구를 대표하는 두 학교의 건축물들은 그자체가 살아 있는 교육장이 될 것이며 이를 교육박물관이나 전시장 등으로 활용한다면 더욱 가치있는 명소가 될 것이다.

경상감영공원이나 국채보상공원 못지 않은 좋은 지리적 조건도 갖추고 있다. 다만 부지매입 등 공원조성 비용이 문제가 될 터인데 나는 범시민운동을 통해 뜻 있는 시민들과 단체가 참여하여 시민공원을 조성하는 방안을 제안하고 싶다. 모금운동이 될 수도 있고 다른 지혜로운 방법이 나타날 수도 있을 것이다. 공원조성의 수혜자인 우리 시민들이 앞장서서 세계가 놀랄 아름다운 역사를 만들었으면 한다.

내 어린 손녀딸에게 그 옛날의 맑은 물과 공기를 물려주지 못하는 부끄러움은 늘 나를 괴롭히고 있다. 우리의 힘으로 조성한 공원을 통해 이 도시 어른들의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지길 바랄 뿐이다.

곽동환 (재)운경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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