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누구나 남다른 버릇이 있게 마련이다. 예술가들에게는 각양각색의 기벽으로 화제가 되기도 한다. 지난해 서울에서 열린 어떤 음악회의 무대 뒤에서 세계적인 성악가들의 습관을 지켜본 경험담은 재미있다.
테너 파바로티는 공연 전에 '굽은 못'을 줍는 버릇이 있어 주최측이 굽은 못을 여러개 떨어뜨려 놓았다고 한다. 소프라노 군둘라 야노비츠는 출연 전에 백포도주를 마셨고,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는 계약 때부터 따뜻하고 차가운 두 가지 수건과 생수를 주문했다 한다.
▲한때 개과천선한 것으로 알려졌던 대도(大盜) 조세형이 일본에서 범죄를 저질렀을 때 많은 사람들은 '제 버릇을 남 주나'라는 말을 했다. 선교사업가.사회운동가라는 딱지가 부른 망상이나 환상 때문에 '국제적 의적 활동'을 벌였을 것이라는 추측도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보다는 평생을 통해 몸과 마음에 잠재된 '도벽(盜癖)'이 재발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가.
▲최근 서울의 한 수입매장에서 고급 실크스카프를 훔치다 상습절도 혐의로 덜미가 잡힌 한 부유층 부인의 도벽은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한다. 지난 한해 서울의 백화점 명품관을 돌면서 옷.선글라스.신발.골프용품 등 1천만원 어치가 넘는 외제 고가품만 훔쳐 네차례나 처벌을 받은 전력도 있다니 기가 찬다.
더구나 수십억원대의 부동산을 가진 건설회사 사장의 부인이지만 "세상 사는 재미가 없을 때 명품을 훔치면 위안이 됐으며, 심심하면 백화점에 훔치러 갔다"지 않은가.
▲도벽증은 어린 시절 부모와의 복잡한 애증에 대한 갈등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사람이나 부모의 과도한 권위에 억눌린 사람들에게 주로 나타난다고 한다.
부모의 관심 결핍으로 생긴 욕구 불만이나 권위에 대한 무의식적 반감이 소극적 형태의 일탈행위에서 훔치는 버릇으로 발전하고, 사회적 질서와 규칙을 깨뜨리게 되며, 이 습관이 짙어지면 병적인 도벽이 된다는 이론이다. 더구나 이런 대리적 복수는 묘한 쾌감을 동반하게 된다고도 한다.
▲이번 상습절도 혐의로 구속영장이 신청된 부인의 경우도 습관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극명하게 말해 준다. 처음에는 거미줄처럼 가벼운 습관은 시간이 갈수록 밧줄처럼 튼튼해진다고 한다.
우리 속담에 '세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있다. 우리의 선조들은 그 때문에 아이들의 행실을 끊고 맺어 버릇을 다잡는 것이 아버지의 할 일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아이의 인성 문제를 너무 가벼이 여겨 그 '부성 원리'를 포기하고 있지나 않은지, 새삼 생각해볼 일이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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