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영화속 이야기-할리우드의 인종차별

"오늘밤 모든 이름없는 유색여성들을 위한 문이 열렸습니다".지난 24일 밤 LA에서 열린 아카데미상 시상식은 우피 골드버그의 말대로 '검은색 잔치'라 불릴 만한 순간이었다.

'트레이닝 데이'의 덴젤 워싱턴이 남우주연상을, '몬스터스 볼'의 할 베리가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두 달전부터 '혹시나'하며 갖은 호들갑을 떨더니 흑인배우 남.여주연상 싹쓸이란 이변이 적중된 것이다.

미스아메리카 출신에 스파이크 리 감독의 '정글 피버'로 데뷔한 할 베리는 1939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해티 맥대니엘이 유모역으로 처음 오스카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이후 '최초의 흑인 여우주연상' 수상자가 됐고, 덴젤 워싱턴은 1963년 '들에 핀 백합'의 시드니 포이티어 이후 '39년만의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지난 86년 아카데미상 11개 부문에 오른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칼라 퍼플'이 예상과는 달리 단 1개 부문도 수상하지 못해 "반 유색인종 단체가 뒤에서 조종했다"며 흑인배우들이 맹렬히 공격한지 16년째다.

이쯤되고 보면 할 베리가 시상식장에서 수상소감을 3분 넘게 발표해서 사회자가 제지하자 "잠깐만요,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이) 여기(흑인에게) 오기까지 74년이 걸렸잖아요"라고 한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하지만 할리우드이 흑인배우나 동양인배우에게 얼마만큼 너그러운 시선을 보내는지는 정말 의문이다.

대체로 흑인배우가 할리우드에서 성공하는 유형은 세가지라고 한다. 스파이크 리처럼 백인영화에 저항해 메가폰을 잡고 독립적인 길을 걷는 경우나, 시드니 포이티어나 덴젤 워싱턴, 로렌스 피쉬번처럼 미남이지만 백인이 아니라서 오히려 상대적으로 이익을 보며 흑인대표로 자리잡는 경우가 있다.

마지막은 모건 프리먼, 대니 글로버, 우피 골드버그와 같은 단역을 전전하다 뒤늦게 연기력을 인정받거나, 크리스 터커, 마틴 로렌스처럼 처음부터 애디 머피식 '떠벌이'로 양념역할을 하는 것이다. 대체로 세번째가 많다.

할리우드에서 좀처럼 깨지지 않는 터부가 흑.백 혹은 황.백 남녀간의 러브신이다. '펠리컨 브리프'에서 덴젤 워싱턴과 줄리아 로버츠는 사선을 넘나들면서도 흔한 키스 한 번 하지 않는다. '리플레스이먼트 킬러'의 주윤발과 미라 소르비노가 그랬고, 본드걸과의 베드신으로 유명한 007시리즈에서도 양자경과 피어스 브로스넌은 진한 신을 보이지 않는다.

달리 얘기해볼까. '리썰웨폰4'에서 황비홍이 무지막지한 백인에 작살꼬치가 되더니, '미녀 삼총사'에서 눈이 볼쌍스레 찢어진 루시리우는 백인이 생각하는 동양미인의 전형쯤이란다.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이 유색인 배우들에게 문을 완전히 개방했음을 의심해본다면 오델로의 후손들이 갖는 지나친 피해의식 탓일까.

최병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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