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롭게 앉아서 책을 읽는 대신 컴퓨터 검색을 통해 지적 욕구를 채우는 분위기는 세계적인 현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매년 신간 발행이 1천만권씩 줄어들고, 국제통화기금 체제 이후 서점들도 20%나 문을 닫았다.
이런 소용돌이 속에서 출판사의 10% 정도만 신간을 내놓는 실정이며, 인문사회과학 단행본 출판은 치명적인 타격을 받고 있다. 한 조사에 따르면 성인의 55.4%가 잡지를 제외하면 한 달에 한 권의 책도 읽지 않는 것으로 드러나 독서문화의 위기를 단적으로 말해 주기도 한다.
▲출판이나 종이책의 개념도 이젠 바뀔 수밖에 없는 시대가 됐다. 우리의 경우 입시 위주의 중등 교육과 취업 중심의 대학 교육, 취약한 도서관 문화 등 독서문화 기반이 약한 상태에서 디지털 시대를 맞은 것이 출판과 유통구조에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원인으로 보인다. 독서문화의 위기는 사회적 환경과 밀접하게 닿아 있는데 우리 사회는 도대체 책을 권하는 분위기가 아니다.
▲교보문고의 지난 3월 한 달 서적 판매량이 무려 161만5천여권으로 서적업계 사상 월 매출 최고액인 185억원을 기록했다는 낭보가 들린다. 이 책들을 눕혀 쌓을 경우(1권당 두께 평균 2㎝) 높이가 3만2천300m나 돼 63빌딩의 130배에 이르며, 무게로 환산(1권당 700g)해도 1t 트럭 1천131대 분량이나 된다. 교보문고의 이번 영업 실적은 그동안 월 최고 매출액.판매량인 지난해 3월(154억원, 139만3천권)에 비해 매출액은 20%, 판매량은 16%가 각각 증가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서울 광화문점의 신기록이다. 대구.대전.성남.부천 등 4개 지방점과 온라인 서점(인터넷 교보문고)도 거느리고 있는 교보문고의 광화문점 3월 판매량만도 93만8천500권으로 높이는 63빌딩의 76배, 무게는 1t 트럭 657대 분량에 이른다니 그 위력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3월은 각급 학교가 개학하는 성수기라고 하더라도 이 같은 기록은 반갑기 그지없다. 하지만 대형화되지 못한 서점들, 특히 지방 서점들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송시열은 '창 밝고 사람은 고요한데, 배고픔을 참으며 책을 읽노라'라고 쓴 적이 있다. 유계도 '한 권을 읽으면 한 권의 보탬이 있고, 하루를 보면 하루의 유익이 있다'고 했다. 독서는 가슴과 머리로 스며들어 인간을 인간이도록 영양가를 주는 '마음의 양식'임은 예나 다를 바가 있을까. 정신문화가 황폐해진다는 우려의 소리가 높아가는 가운데 들려온 교보문고의 이번 낭보는 일시적인 거품이 아니라 인간 정신에 젖줄을 대는 양치기들이나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청신호이기를 기대한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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