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늦깎이 대학생된 화가 이정웅씨

인간승리의 얘기는 언제나 아름다운 것 같다. 화가로서 '적녹 색약'이란 치명적인 약점(?)을 갖고 있음에도, 화단에서 적잖은 성공을 거둔 이정웅(40)씨가 이번에는 미술대학 신입생이 됐다.

화단에서는 그를 두고 그 정도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자체가 대단하다는 평가를 해왔다. 미술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행세하기 힘든 화단에서, 그것도 고졸 학력에 독학으로 그림 공부를 했다는 이력까지 알고 나면 놀랄 수밖에 없다.

계명대 대명동 캠퍼스에서 만난 그에게서 신입생다운 분위기가 느껴졌다. 입학식에 앞서 어깨까지 길게 늘어뜨렸던 머리를 단정하게 자르고 살짝 염색을 했다. 나이에 비해 훨씬 젊어 보이는 것도 학교생활의 '긴장감' 때문이 아닐까.

벌써 열네차례 개인전을 가진데다 호당 20만원에 작품을 파는 '잘나가는' 작가가 무엇 때문에 계명대 미술학부에 들어갔는지 궁금했다.

"좀 쑥스럽긴 하지만, 그냥 재미있습니다. 지금까지 단 한차례도 지각, 결석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고교졸업후 대학을 3차례 도전했지만 '색약'이란 걸림돌 때문에 번번이 좌절했다.

몇년전 미술대학 입학시험에 색약검사 항목이 없어지는 바람에 고령자 입학으로 비사우수장학생에 선발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색약은 우리나라 성인남자 10명중 1명꼴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질병도 아니고 작품활동에 불편한 점이 거의 없어요. 이로 인해 지금까지 대학 문턱에 가보지도 못했다고 생각하니 좀 억울하죠". 극사실적인 묘사에 치중하는 그는 단지 색약 탓에 자신의 작품에 순색보다는 중성색이 많이 들어가는 경향을 보인다고 말했다.

이달초 공산갤러리에서 2인전, 이달말 서울의 유로갤러리의 개인전이 줄줄이 예정돼 있는 그는 학교 수업과 작품활동을 병행하는 데 어려움이 많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이를 헤쳐나갈 것이라고 밝게 웃었다.

"지식이 늘어나면 늘수록 그림의 품위가 더해질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대학생활을 통해 그림이 어떻게 바뀌어가고, 제 자신이 성숙해가는 모습을 보여줄 겁니다".

박병선기자 l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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