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북동부 지중해를 끼고 있는 카탈루냐주의 주도 바르셀로나에서는 요즘 한 건축가를 기리는 이벤트들로 온통 축제분위기이다. 바르셀로나가 낳은 위대한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1852~1926)의 탄생 150주년을 기념하는 '가우디의 해'가 지난달 20일 소피아 여왕의 선언으로 정식 개막된 이후 그의 생애와 작품을 기리는 수많은 기념행사가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가우디는 바르셀로나를 중심으로 가히 혁명적이라 할 만한 독창적인 건축물들을 남겼다. 그의 작품들은 어느 것도 똑같은 것이 없다. 꾸불꾸불하고 꿈틀대는 것 같으며 마치 물 위에 떠다니는 듯한 그의 건축물은 인체와 산, 바다 같은 자연물을 건축에 투영해 하나같이 기존의 상식체계를 벗어나 새로운 창조적 세계를 제시해 보인다.
개막식에 참석한 영국 건축가 노먼 포스터의 말처럼 가우디의 건축물은 바르셀로나 라는 도시 전체에 시적(詩的) 매력을 물씬 풍기게 만들었고 전세계 건축학도와 관광객들을 이 도시로 끌어당기는 강력한 흡인력을 갖고 있다.
특히 1883년부터 짓기 시작한 사그라다 파밀리아 교회는 100년이 지난 지금도 12개의 탑 중 4개가 아직도 미완성인 채 건축중에 있다. 이 미완성 교회는 세기를 넘어선 긴 세월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독특한 외관으로 바르셀로나, 나아가 스페인을 상징하는 랜드마크 역할을 하고 있다.
꿈조차 없는 우리 아이들
도대체 가우디는 왜 자기 당대에 결코 완성하지 못할 그런 장구한 시간이 소요되는 건축물을 설계했을까. 세계의 어떤 건축물과도 전혀 다른 '희한하게' 생긴 사그라다 파밀리아 교회의 모습을 보노라면 늘 그런 생각이 든다.
대개의 사람들은 자기 생전에 할 수 있는 한 모든 영광을 누리고 싶어하고 그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런 점에서 자신의 인생을 바친 건축물이 나타낼 영광의 열매를 후세사람들에게 고스란히 남긴 천재 건축가는 아마도 '꿈꾸는 광인'이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하늘을 향해 높이 솟아날 탑들에 일생일대의 꿈을 내건 아름다운 광인. 아무튼 바르셀로나 사람들은 가우디가 100여년전 남긴 꿈의 건축물 속에서 항상 그를 떠올리며 살고 있다.
그리고 그의 못다이룬 꿈을 지금도 조금씩 이루어가고 있고.늘 소란스럽고 들떠있고 마치 끓는 물 속에 든 개미처럼 안절부절못한 채 우왕좌왕하는 우리네 생활방식과 비교해볼 때 그네들의 그런 느긋하고 여유로운 삶의 자세가 퍽이나 부럽다.
꿈을 키워주는 소망의 자세
그리고 저마다의 꿈을 싹트게 하고 가꾸고 키워가는 그네들의 문화적 토양이 질투날 정도로 부럽다. 새봄이 왔나 했더니 어느새 4월. 토마스 스턴즈 엘리어트는 '잔인한 계절'이라고 읊었지만 우리의 녹색연합이 붙인 '잎새달'이라는 애칭이 더 잘 어울리는 달이다.
모든 초목이 싱그러운 새잎을 내면서 온 사위에 생명력이 약동하고 있다. 자연은 새 잎과 새 꽃들로 한껏 화려한데 우리사회의 꿈나무인 청소년들은 갈수록 새들새들해지고 있다.
덩치만 컸지 힘없는 허벌쑥인데다 온실속 화초처럼 길러져 작은 어려움에도 넘어지기 일쑤이다. 더구나 걱정스러운 것은 그들의 꿈이 너무나 허약하고 그나마 꿈조차 없는 경우도 많다는 점이다. 하긴 이른바 아교시 수업이 대변하듯 새벽에서 새벽까지 입시공부에만 시달리니 꿈 꿀 시간이나 있을까.
이러다간 결국 우리사회가 복제인간처럼 틀에 박힌 사고와 틀에 박힌 행동양식, 조급증에 중독된 인간군상들로 꽉 메워질지 누가 알랴.
씨 뿌리기 좋은 계절이다. 식물이 잘 자라게 하기 위해서는 영양분있는 흙에 적당한 물, 햇빛, 그리고 돌보는 자의 사랑이 필요하다. 빨리 자라지 않는다고 인위적으로 싹을 쏙쏙 뽑아올린다면 얼핏 좀 자란 것 같이 보일지 모르지만 결국 말라 죽게된다.
사랑으로 지켜보면서 기다릴 줄 아는 지혜,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에게 꿈의 씨앗을 심어주고 그 꿈을 키워주는 소망의 자세가 필요하다. '자라지 않는 것은 죽는다'는 레오 버스카글리아의 말을 음미해 볼 만하다. 이 식목의 계절에 장차 가우디처럼 아름다운 '꿈의 광인'들이 우리사회에도 많이 나타나기를 기대하는 소망의 씨앗을 심어본다.
전경옥(특집기획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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