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구IC를 거쳐 금호강 화랑교를 건널 즈음 펼쳐지던 강변의 절벽 풍치는 대도시에선 드문 자연경관이었다. 더하여 언덕 위 영남제일문은 마치 도시의 관문인 양 당당하였다. 그러나 일대가 개발되면서 그 분위기가 사라져버렸다. 이 아쉬움은 옛 정취를 그리워하는 복고취향의 탄식 탓이 아니다.
그것은 무엇이 우리의 모습을 지배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강변의 거친 자연미와 그윽한 역사미가 크고 도도한 인공물에 압도당했다. 결국 자연지형은 훼손되었다. 사면의 어설픈 인공폭포는 그 넓은 스케일을 통해 인위적 돌쌓기가 얼마나 보잘것없는 지를 잘 보여준다. 도시의 자연은 취약하기 마련이다. 밤이 되면 더욱 확연해진다.
푸르게 번쩍이는 시설물과 조명은 주변의 모든 것을 마치 호텔의 일부인양 보이게 만든다. 아무리 빛의 연출이 뛰어나도 영남제일문은 마치 무대의 배경처럼 보인다. 공원이 특정건물의 안마당이 된 꼴이다. 허기야 편리한 도시문명의 발전을 위해 그 정도 변경은 불가피하다고 할 지. 아니 한술 더 떠서 그런 모습이 보다 현대적이라 할 지 모르겠다.
지방자치제 이후 더욱 늘어난 지역발전의 구호에 따라 무엇이든 발굴하고 개발하고 복원하고 있다. 그런데 이 과정에는 너무 의욕적인 발전논리와 교묘한 상업주의가 결탁한 경우가 허다하다.
그것은 종종 세련된 이미지를 뽐내며 외양이 화려하고, 과장된 기능과 타산적인 능률을 내세운다. 심지어 시민 의식수준을 탓하며 그냥 밀어 부치니 결과는 뻔하다. 돈이 없으니 당연할 지 모른다. 미개발도 문제될 수도 있으나, 더한 것은 바로 잘못된 디자인이 저지르는 후유증이다. 세상 모든 디자인 중 평범한 것이 절대 다수라면, 굿디자인은 손꼽을 정도 뿐.
그 중간에는 잘못된 디자인이 수없이 들어차 있다. 잘못될수록 겉은 번지르르하다. 졸부가 좋아하는 것이 반짝거리고 매끄러운 명품이 아니던가. 결국 추한 디자인의 범람시대. 늘어나는 것은 저질이고 모조이며 위선이다.
과연 우리의 현대도시에 진품명품이 있는가? 이제 우리의 건강한 양심과 창의적인 손이 진품을 지키고 명품을 창작하도록 하기위한 시민문화운동이 절실하다. 도시의 진품은 풋풋한 땅이요, 흙 그 자체이다.
영남대 교수, 환경설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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