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법도 법이다'.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마시고 죽으면서 동서고금의 역사에 새긴 명언이다. 아무리 악법이라 하더라도 법은 지켜야 한다? 소크라테스의 유언을 사람들은 흔히 그렇게 해석한다. 하지만 그런 해석은 소크라테스에 대한 모독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소크라테스의 유언을 소설가적 상상력을 동원하여 해석하면 이렇다. '악법도 법의 탈을 쓰고 있으니 그 힘에 못 이겨 내가 저항도 못하고 이렇게 죽는구나'.
그러나 예링은 말한다. '불법에 맞서는 투쟁이나 저항이 없으면 법은 자기 자신을 포기하게 된다'. 즉 '법의 목적은 평화이지만 그 수단은 투쟁'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학생, 교사, 이산가족, 국가유공자 등 1300만 명에게 금강산 관광경비를 지원한다는 정부 방침이 발표되자 통일부 홈페이지는 호떡집에 불난 것 같이 들끓고 있다.반대론자들은 '국민을 위한 정부냐 특정기업을 위한 정부냐', '세금으로 국민의 30%에게 금강산 관광경비를 지원한다는데 정당한 절차를 거쳐 결정된 정책이냐', '놀러다니는 사람 보태줄 돈 있으면 밥굶는 아이들에게 라면이라도 사주고, 홀몸노인에게 쌀 한 말이라도 드려라'이다. 이런 논란을 보며 문득 옛날 생각에 잠긴다.◈관광경비 지원 논란
장남으로 혼자 고등학생 신분을 유지하고 있던 내 차비에 비해, 공납금이 없어 공장에 다니던 누이들의 차비가 두 배나 비쌌던 것이다. 그래서 대학생때 학교신문에 "학생에게 차비를 면제해주는 정책은 잘못"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학비가 없어 당시 국민학교와 중학교만 마친 채 교복 아닌 옷을 입고 공장에 다니는 근로청소년들은 어른 차비를 내고, 교복 입고 학교에 다니는, 즉 또래의 근로청소년에 비해서는 경제적으로 나은 가정의 자녀인 학생은 차비의 반만 내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물론 지금도 버스를 타면 학생은 성인에 비해 적은 학생차비를 낸다. 왜 학생은 지금도 차비를 적게 내나? 이때 학생은 학교에 다닌다는 본래적 의미보다는 청소년 내지 미성년의 개념으로 간주되고, 따라서 아직은 차비를 낼 소득원이 없으니 그렇게 감면을 해주는 까닭이다. 청소년이 곧 중고등학생인 세상이 되었으므로 이 논란은 유효성을 상실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부의 금강산 관광 경비 보조를 받아들인다면, 학생에게는 그렇게 조치할 수도 있다는 판단을 가질 만하다. 머지않아 현실이 될 통일의 앞날을 미래의 주역인 청소년들에게 앞당겨 체감하게 하는 교육적 배려도 내포할 수 있는 정책인 까닭이다. 그렇다면 이산가족은? 물론 가능하다. 개인 단위이면서도 남북분단의 민족 모순을 온몸으로 껴안고 있는 이산가족이 금강산을 밟는 것은 뚜렷한 상징성을 함의하기 때문이다. 다시 국가유공자는? 물론 가능하며, 나아가 국가공동체 유지를 위한 바람직한 정책으로 권장되어도 모자라지 않을 터이다. 그렇다면 교사는? 세상의 이분법적 인식을 대표할 만한 미성년인 학생도 아니고, 민족모순의 상징인 이산가족도 아니고, 공동체를 지켜낸 국가유공자도 아닌 교사는? 그래서 나는 금강산을 거부한다.
◈우선순위 신중히 고려를
역사는 자유와 평등의 확산에 대한 증언이다. 사상과 표현의 억압을 타파하고 왕에서 시민으로, 다시 노동자·농민으로 정치적 자유가 확산되고, 계급 차별을 넘어 경제적 평등이 확산되는 인간발전의 기록이다. 그러므로 금강산 관광경비 지원은 교사가 아니라 학생, 친일파가 아니라 국가유공자, 일반가정이 아니라 이산가족, 부자가 아니라 빈자에게 주어져야 마땅하다.
교사에 대한 존중은 생애에 한번 금강산 유람갈 때 30만원 남짓한 경비를 지원해주는 미봉책 보다 그들의 정치·사회·경제적 지위 향상을 도모하는 본질적 개혁을 통해 이루어져야 옳다. 그러므로 교사들이여, 금강산 관광경비 지원의 불법을 거부하자. 불법을 거부하여 교사의 도덕적 실존을 지켜내고, 민족의 교사로 당당하게 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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