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대왕'을 보며 '인간의 본성은 정말 선한 것일까' 생각한다. 어쩌면 인간은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선행조건이나 상황, 환경에 좌우되는 나약한 존재가 아닐까.
여기 보기에 몹시 불편하고 혐오스런 영화, '배틀로얄(2000년)'이 "나는 오늘 친구를 죽였다"는 충격적인 광고카피와 함께 관객을 찾는다.
'42명의 중학생들이 생존게임에서 살아남기 위해 서로 죽인다'는 극단적인 설정과 청소년들의 잔인한 살해장면으로 일본열도를 뜨겁게 달궜던 동명의 소설(99년)이 원작.
교내폭력으로 전국 교사 1천200여명이 순직하는 심각한 학교붕괴가 발생하자, 일본 정부는 강인한 생존능력을 갖춘 청소년 양성이란 미명아래 '배틀 로얄법(BR법)'을 제정한다.
권위를 짓밟힌 기성세대의 복수심이 담긴 BR법은 학급 하나를 무작위로 뽑아 고립된 섬에 풀어놓고, 사흘동안 서로 죽고 죽이는 살인경쟁을 시킨 뒤 살아남은 단 한사람만 집으로 돌려보낸다는 내용.
수학여행을 가던 중학교 한 학급 42명은 낯선 무인도로 납치돼 무장 군인들에 둘러싸인다. 학생들에게는 섬 지도와 간이식량, 기관총, 도끼, 낫 등 무기가 지급된다. 규칙은 '서로 죽여라, 살아남은 단 한사람만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3일 이내 최후의 한 사람이 결정되지 않는 경우 생존 학생들에 채워진 목걸이는 자동 폭발한다'.
비현실적인 상황에 어리둥절함도 잠시, 한 여학생이 머리에 칼이 박혀 죽고, 목걸이가 폭발해 목이 날아가자 아이들의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 시작된다. 친구를 죽이느니 자살하겠다는 아이도 있고, 냉혹한 살인마로 적응하기도 한다. 믿을 만한 친구들끼리 뭉치지만 사소한 오해는 대량학살로 이어진다.
"도대체 무슨 내용이야, 말도 안돼" "(일본영화답게) 스크린의 과장만 있고 내용은 없어". 너무 잔인하다는 공통된 견해만큼이나 감상평이 엇갈린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우리가 발붙인 현실이 얼마나 '비현실적'으로 잔인한 것인지. 아이들은 기성의 가치관을 부정하고, 어른들은 폭력을 동원해서라도 복종시키고자 한다. 학생들이 좋든 싫든 게임이 시작되듯, 우리 의사와는 상관없이 세상은 생존을 강요한다.
치열한 경쟁에선 자신을 위해 친구를 이겨야 한다. 학생들의 목에 채워진 목걸이는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고 외친다. 생존을 위한 본능은 극한을 달린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 잔인함은 절대로 필요한 요소다.
감독 후쿠사쿠 긴지는 "일본 사회가 지난 병폐를 압축하고 있는 학교를 통해 어른과 아이들 사이의 단절에 대해 고발하고, 청소년들에게 '어쨌든 살아야 한다'는 메세지를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영화속에서 섬뜩한 표정의 선생으로 나오는 기타노 다케시는 말한다. "사람을 미워한다는 것은 그만한 각오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정말 '어쨌든 살아남아야 하는 세상'과 화해하기 위해 또 얼마만큼의 각오가 필요한 것인지. 12일 개봉.
최병고기자 cb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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