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왕건' '제국의 아침' 등 TV사극의 공적을 꼽으라면 사람들의 역사적 관심을 고려시대로까지 확장시켜 놓은 일일 것이다.
그저 역사라면 조선시대 궁중암투가 전부인 것 처럼 생각했던 현대인들에게 통일신라말과 고려시대 초기의 100년이 우리 민족의 삶과 인식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쳤왔음을 알게 해줬다.
'10세기 인물 열전'(부경역사연구소 지음.푸른역사 펴냄)은 의도됐든 의도되지 않았든 간에 결과적으로 '고려사' 유행의 흐름을 타고 있는 책이다.
여기에는 우리 역사속에서 가장 격렬한 전환기 또는 격변기로 불리는 시기, 서기 850∼950년을 살다 간 22명의 인물의 삶이 담겨있다. 왕건 견훤 궁예 등 영웅호걸의 무용담부터, 최치원 최응 최지몽 등 학자들의 활약상, 여성가장 지은 하급군관 임춘길 신라인통역가이드 김정남 등 민초들의 삶까지 다양하다.
무엇보다 이 책에는 TV사극을 몇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눈에 익은 이름들이 줄줄이 등장, 친숙함을 주는게 강점으로 와닿는다. 부산.경남에서 활동하는 젊은 사학자들이 사극에서 드라마틱한 방향으로 왜곡됐거나 바꿔놓은 역사적 사실을 기록에 근거해 바로 잡으려 시도한 것도 이 책의 의미를 더해주는 부분이다.
사극 '태조 왕건'에서 후백제의 장수로 등장하는 해상세력가 능창(일명 수달)은 나주 공략을 하던 왕건을 죽이려 했다는 기록만 전할뿐, 견훤의 부하라는 것은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다.
또 사극에서 기회주의적 인물로 등장하는 청주인(淸州人) 임춘길은 실제 고위 장군이 아니라 하급군관이었고, 쿠데타를 일으킨 배경도 쫓겨난 궁예에 대한 충정을 지키려 한 '순수한 남자'라는게 정설이다.
남성중심의 유교적 시각에 맞춰 음란하고 국정을 농단한 왕으로 묘사된 통일신라 진성여왕을 국난을 타개하기 위해 노력한 인물로 재해석한 '진성여왕을 위한 변명', 1천년전 중국과 일본 신라를 무대로 역관의 역할을 뛰어넘어 무역중개인 문화전달자로 종횡무진 활약한 신라인 '김정남' 등의 얘기도 흥미롭다.
나른한 봄날, 생활의 번뇌를 훌훌 털고 가벼운 기분으로 역사로의 여행을 하기에 더없이 좋은 책이다.
박병선기자 l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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