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태일 교수 경선 관전기

국민은 '투표장에서만' 주인일 뿐 문을 나서는 순간 다시 노예로 돌아간다는 말이 있다. 위임 민주주의의 모순에 대한 지적이다. 정치인들은 당선이 되고 나면 자기 멋대로 행동하고 국민들의 존재는 안중에도 두지 않는다는 현실을 가리킨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 동안 국민은 '투표장에서도' 주인이 아니었다. 정당 과두세력들이 위로부터 내려 준 후보자들 가운데 하나를 고를 권리밖에 가지고 있지 않았던 우리는 절반의 주인도 아니었다.

그런 점에서 후보를 당원과 국민들이 선택하도록 한 국민참여경선 제도의 도입은 가히 정치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우리 나라의 정당정치가 일인지배정당, 패거리정당에서 벗어나 국민정당으로 거듭나게 할 가능성이다.

민주당 대통령후보 경선이 치러진 7일 포항체육관은 축제마당이었다.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과 이인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사이로 정정당당하게 싸우겠다는 정동영 지지자들이 분주히 오가고 있었다. 모두 즐거운 얼굴이다. 온전한 주인이 되고 있는데 어찌 기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아쉬운 점도 많다. 경선에 참여하고 있는 후보자들 사이의 '겉도는' 논쟁 때문이다. 포항 유세에서도 이인제 후보는 이념 논쟁의 필요성을 줄기차게 요구했고 노무현 후보는 걱정하지 말라고 일축했으며 정동영 후보는 '밥그릇을 깨지는 말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하지만 이념 논쟁을 요구한 후보는 과거 들추기에 집착했고 걱정하지 말라고 일축한 후보는 선언 이상의 설명을 하지 않았고 밥그릇 깨지 말자는 후보는 다른 두 후보 사이의 '산술적' 균형에 머물렀다.

이념 논쟁은 정당정치의 발전을 위해서 좋은 일이다. 지역주의 정당으로부터 정책정당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논쟁이 있어야 한다. 논쟁은 당 조직의 발전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억눌려 있던 당 내부의 온갖 모순이 논쟁 과정에서 정화될 것이다. 선거란 본질적으로 이런 카타르시스 기능을 하는 정치 기제이다. 후보간 논쟁은 당의 조직과 이념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다.

부패하지 않은 우파와 위선적이지 않은 좌파가 서로 건강한 긴장을 유지하는 것이 사회발전에 필요한 일이라고 보면 좌우 논쟁도 피할 일만은 아니다. 다만 기왕에 논쟁을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 딱지 붙이기 방식의 이념 논쟁이 우리 나라에서는 그 동안 무고한 사람 죽이기로 악용되어 온 탓에 걱정이 크다. 미래지향적이고 생산적인 논전을 기대해 본다.

한 판의 대결이 끝난 포항체육관 모퉁이에서 나는 민주당의 후보 경선이 주말흥행으로서의 성공뿐만이 아니라 우리 나라 민주주의의 '내공'을 쌓는 계기가 되기를 기원했다. 후보 경선제의 성공은 민주당의 것만이 아니라 우리 나라 정당정치 발전의 시금석이기 때문이다.

영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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