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EU, 대북 인권문제 강력 비판

유럽연합(EU)이 8일 유엔인권위에서 북한 인권문제를 강도높게 비판하면서 '적절한 조치'를 고려할 수도 있다는 강력한 경고메시지를 보낸 것은 9.11 테러사태 이후 서방의 대북 인권시각이 크게 변화한 것을 반영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는 EU와 미국 등 서방진영이 '테러와의 전쟁'을 적극 지원 내지 후원하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비난의 강도를 낮추면서 '악의 축'으로 지목된 이란, 이라크, 북한 등에게 '인권공세'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도 확연히 드러나고 있다.

EU와 미국이 약속이라도 한듯 그동안 주공격 대상이었던 중국에 대한 비난의 화살을 북한 등으로 전환한 것은 테러와의 전쟁을 염두에 둔 국제연대의 강화라는 전략적 의도가 담겨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렇지만 북한의 인권침해 상황이 부각된 배경에는 6.15 남북정상 회담이후 북한당국이 취해온 개방.개혁 노선이 서방의 기대수준에 못미치고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는 실망감을 반영한 점도 만만치 않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특히 프랑스와 아일랜드를 제외한 13개 회원국이 북한과 수교를 하고 인권대화에 나서는 등 북한에 대해 온건.유화 노선을 취하고 북.미대화의 중재역할까지 자임했던 EU가 '대북압박'에 나선 것은 적지않은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날 EU의 대북 관련 발언내용을 살펴보면 북한 당국의 인권개선 의지에 대한 강한 의구심과 함께 인내심도 한계점에 달하고 있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강조하는 대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EU는 지난해 유엔인권위에서 미국의 부시행정부가 대북 비판의 강도를 높인 것과는 대조적으로 북한 인권문제를 전반적으로 간략히 지적하고 북한의 인권개선 의지를 부분적으로 긍정 평가하는 온건한 자세를 취했다.

그러나 이번 인권위에서는 EU-북한의 인권대화가 시작됐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구체적인 결실이 나오지 않고 있다는 실망감을 표시하면서 북한이 "건설적인 자세"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촉구했다.

EU가 '적절한 조치'를 검토할 목적이라는 단서를 분명히 하면서 내년도 인권위 전까지 예의 주시하겠다는 뜻을 천명한 것은 이제는 인권개선에 대한 가시적인 결과물이 나올 시점이 됐다는 일종의 시한을 제시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실제로 EU는 연초 한국과 양자협의 과정에서 이번 인권위에서 대북 인권규탄 결의안 상정 문제를 제기했으나 대북 관계를 고려한 우리측의 적극적인 설득으로 보류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따라서 EU가 이날 구체적으로 열거한 △국제적십자위원회(ICRC) 등 국제인도지원기구들에 대한 접근 및 근무조건 개선 확대 △정치적.시민적 권리협약과 경제.사회.문화적 권리협약, 아동권리에 관한 협약, 모든 형태의 여성차별 철폐협약 등 기존에 가입한 인권관련 국제협약의 성실한 이행

△고문방지협약과 모든 형태의 인종차별철폐협약에 대한 서명.비준 △유엔인권관련 기구에 대한 필요한 정보제공 △유엔인권고등판무관실과의 대화 등이 어느 정도 충족되지 않을 경우 인권위 차원의 결의안 상정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EU가 내년도 인권위에서 대북 인권규탄 결의안을 상정하게 될 경우 6.15 남북정상회담이후 추진돼온 대북 경제협력 및 인권대화 등 전반적인 관계개선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을 것이 분명하다.

한편 중동사태로 인해 회의 일정이 지연되고 그 사이에 임동원 특사의 방북으로 제4차 남북이사가족 방문단 교환 합의가 이뤄짐으로써 다소 의미가 퇴색되기는 했지만 EU가 6.15 남북정상회담 공동선언에 따른 이산가족과 친지들의 교환방문과 같은 인도적 문제의 신속한 해결을 두번째 요구사항으로 제시한 점은 '남북합의 이행'에 상당한 비중을 두고 있음을 입증한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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