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의 수도 마닐라는 교통지옥이다. 이 나라 사람들이 '트래픽(Traffic)'이라고 부르는 교통혼잡 구간에 들어서면 그야말로 '전쟁'을 방불케한다.
하지만 버스·택시 등 이 나라 대중교통 종사자들의 표정은 밝기만 하다. 아무리 차가 밀려도 이따금 경적만 울릴 뿐 창문을 열고 욕설을 퍼붓거나 험악한 얼굴을 하는 이들은 드물다. 물론 승객에게 '소리를 질러대는' 운전기사도 찾기 힘들다.
필리핀보다 국민소득이나 교육수준에서 월등히 앞서는 월드컵 개최도시 대구는 어떨가. 다른 지역과 현격한 차이를 느낄 수 있는 무뚝뚝한 말투, 마치 화난듯한 표정. 대중교통 뿐만 아니라 자가용까지 운전자들의 표정은 험악하다못해 쳐다보기가 '무서울' 지경이다.
지난 해 말 월드컵 문화시민 중앙협의회가 실시한 대구 등 전국 월드컵 개최도시 10곳의 친절·질서·청결분야 현장 모니터링은 이같은 '따뜻함을 발견하기 어려운' 대구시민의 겉모습을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질서분야에서 대구는 전국 최하위를 기록했다. 자동차 운전자들의 정지선 지키기 비율을 조사한 결과 대구는 72%의 위반율을 기록, 33%의 위반율에 머문 제주와 무려 2배 이상의 차이를 보이며 가뿐하게 전국 10대 월드컵 개최도시 중 '꼴찌'를 움켜쥐었다.
보행자 신호지키기에서도 대구는 27.4%의 높은 위반율을 나타내 역시 10위를 차지했다. 인천·광주·부산을 비롯 전국 최고의 도로교통 혼잡률을 보이고 있는 서울까지 한자릿수 위반율이었으나 대구는 이들 도시를 '멀찍이' 따돌렸다.
서울지역 근무경험을 가진 대구의 한 경찰관은 "대구는 네모반듯한 도시구조를 가진데다 도로율도 높아 전국 7대 도시 가운데 가장 혼잡도가 덜한 지역이지만 운전자들은 물론 보행자들까지 질서를 잘 지키지 않는다"며 "투박한 말투에다 언성도 높아 상대방이 항상 싸움을 걸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털어놨다.
친절분야의 경우 대구는 전화응대 친절도에서 전국 5위, 길안내 친절도 8위, 관광명소 친절도 6위, 관광명소 주변 음식점 친절도 8위, 특산물 상점 친절도 8위 등 이 분야에서도 전국 최하위권이었다. 어느 곳을 가든 사근사근한 말소리를 듣기 어렵다는 것이다.
청결도를 조사한 결과에서도 대구는 특산물 상점의 청결도만 전국 4위를 차지했을 뿐 도로청결도 8위, 화장실 청결도 9위에 랭크됐다. 또 월드컵기간중 외국인들이 자주 찾을 것으로 예상되는 관광명소 청결도는 10위를 기록해 전국 꼴찌였고 관광명소 주변 음식점 청결도도 8위였다. 외국인 관광객이 찾아오다 이같은 통계조사를 보고 달아날만한 충격적 결과.
월드컵 문화시민 중앙협의회는 또 지난 해 12월 전문 조사기관인 미디어 리서치와 함께 10개의 월드컵 개최도시 중 지하철이 운행되고 있는 서울·부산·대구·인천 등 4개 도시의 지하철역 이용 시민들을 대상으로 에스컬레이터 바로타기 준수율을 조사했다.
에스컬레이터 이용시 오른쪽에 서고 왼쪽은 바쁜 사람을 위해 비워두는 에티켓인 에스컬레이터 바로타기에 대한 전체 준수율은 86.5%로 나타났으나 대구는 67.8%를 기록, 서울(91.5%), 인천(81.9%)에 또 뒤졌다.
게다가 에스컬레이터 이용 에티켓을 지키지 않은 대구 지역 '비준수자'의 에스컬레이터 바로타기 인지도는 불과 1.8%에 머물러 '질서를 지키는 방법'조차 모르는 시민들이 절대 다수였다.
그러나 서울(55.3%), 인천(68.5%) 등 수도권 지역 시민들은 에스컬레이터 이용 에티켓을 대다수가 알고 있었다. 월드컵 문화시민 대구시협의회 한 관계자는 "이 달부터 대대적인 캠페인을 통해 '세계 시민'에 적합한 질서의식을 심는 운동을 펼칠 것"이라고 말했다.
최경철기자 ko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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