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진덕규칼럼-보수와 진보의 모습

세계는 지금 새 이데올로기로 그 지형을 엮어가고 있다. 냉전 이데올로기 대신에 글로벌리즘이, 개발주도적 과학주의보다는환경적 생태주의가, 경쟁적 개인주의보다는 인격적 공동체주의에 많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그러나 한반도의 시계는 지금도 1950년의 어느 날을 가리키고 있다. 이데올로기는 역사의 뜻매김이며, 개인의 일상성을 규제하는 가치관념이다. 생활양식으로 표현되지 않는 이데올로기는 아무리 그럴듯해도 허황할 뿐이다. 사람들은 각기 자기 나름의 이데올로기를 갖고 있다. 그러므로 자신이 주장하는 이데올로기와 자신의 삶이 일치될 때 비로소 이데올로기의 정상성이 자리잡게 된다.

보수주의자라면 다음 몇 가지의 일상성을 보여주게 된다. 자기 민족 중심주의, 철저한 자녀교육, 엄격한 자기 성찰,호의적인 종교관, 애국주의 등이다. 보수주의자는 자기 민족이 중심이 된 세계를 이룩하려 한다. 이점에서 그들은 국제사회를 보다 현실적으로 바라보려 한다.

보수주의자는 강한 애국심을 갖고 있다. 그들에게 국가는 평생토록 떠안는 견고한 성채와 같다. 모든 것은 국가로부터 시작되고 국가로 귀일된다고 믿으며 국가에 의해 가치로운 삶이 실현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 개인보다는 국가의 역할을 중시하며 부국강병을 최고로 여긴다. 또한 그들은 자녀 교육에 대해 깊은 관심을 나타내는데, 교육은 인간의 문명을 방향 짓는 요소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점진적인 발전을 추구하기 때문에 교육과 개혁을 중시하며, 그 핵심에 국가가 자리잡고 있다.그들은 기존 가치와 제도를 중시하며 스스로를 그 모범자로 자처한다. 보수주의자는 변혁이나 혁명은 단지 허황된 기대감의 포로일 뿐이라고 믿는다.

그 때문에 그들은 전통과 관습을 중시하며 그것이 다음 세대로 전승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종교도 보수주의자에게는대단히 중요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보수주의자들은 종교의 옷을 두껍게 입고 있다. 바로 이점에서 보수주의자들은 단단한 현실주의자요 경험론자이다. 진보주의자들은 기존체제나 역사를 비판의 대상으로 바라보면서 변혁을 통해 극복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진보주의자의 역사관에서 과거는항상 암울함이며 민중들의 핍박을 기억하고 있다. 민중들의 억압 속에 소수 특권층의 군림으로 지난날의 역사를 이해하고 있다. 그러므로 진보주의자는 진보적 역사관, 발전적 역사의식을 그 기저에 깔고 있다.

이점에서 진보주의자에게는 현실에 대한 만족보다는 미래에 대한기대감으로 이어진다. 그것은 단지 상대적인 결핍에서가 아니라 더 큰 가치, 즉 사람들에게 평등과 평화로움을 가져다주기 위한 투쟁의 중요성을 믿기 때문이다.

그들이 기대하는 내일은 더 가치롭고 더 평등하고 더 정의로운 것으로 이를 민중의 힘으로 이룩할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다.진보주의자는 사회를 갈등적으로 파악한다. 사회는 개인적인 자아 실현의 바탕인데도 오히려 기존 제도와 구조가 그것을 제약하면서 이미 존재해온 일정한 틀 속으로 인간을 밀어넣고 있다고 생각한다.

진보주의자는 일시적 타협이나 점진적 발전을 배격한다. 그보다는 변혁을 중시하고 일거에 모든 상황을 극복함으로써 문제를 발본색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진보주의자에게 오늘은 오직 내일을 위해서만 그 의미가 있으며 국가보다는 사회가 한층 더 중시 된다.

오늘 우리사회에서 보수주의나 진보주의를 바라보면서 어딘지 공소한 감정에 싸일 때가 많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우선 이데올로기에 입각한 삶의 진지성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보수주의자에게는 자기 절제의 결여를 목도할 때가 있다.

보수주의자들이 강한 발언권을 갖는 것은 국가 권력이 그들을 지켜주기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국가를 위한 헌신성과 철저한 자기절제 때문이다. 또한 진보주의자는 합리적 정당성을 주장하면서도 실제로는 집합체의 힘으로 기존의 강고한 벽에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 뿐 아니라 기존체제의 변혁만 이룩할 수 있다면 수단의 정당화가 가능하다는 논리가 주장되는, 이렇게 되면 진보주의자의 연대세력인 서민들의 박수도 얻기 어렵게 된다. 평등함을 이룩하기 위해 이웃과 연대하는 진솔한 삶, 그리고 도전과 모험을 합리성에서 모색할 때 비로소 진보주의자다움이 확보될 수 있다.이 점에서 지금 우리사회는 참 보수주의자도 참 진보주의자도 없는 단지 그것을 흉내내는 사람들만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삶의 실천성이 외면된 이데올로기의 사회, 다른 이데올로기와의 공존성의 배격, 이러한 상황이 바로 오늘 우리 사회의 비극의 원인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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